제 글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행기를 쓰는 방식을 살짝 변경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과거의 여행기를 순서대로 기록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고, 굳이 시간 순서대로 현지에서 기록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여,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여행기를 추가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밀린 여행기라고 여겨지고 한참 뒤에 압박감 속에 쓰려고 보니 글 수준이 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행루트를 올리는 것으로도 현재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루트는 제 개인 이동기록이라 앞으로 실시간 여행기와는 차별화를 둘 예정입니다. 기존 여행기는 장소와 시간을 중심으로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을 떠난지 50일이 되었다. 그리고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거쳐 조지아로 다시 돌아왔다. 3주 전에 떠났던 트빌리시로
오니 어째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근데 나를 더 압박하는 문제가 트빌리시로 돌아왔다는 것은 또 다시 ‘게으른 여행자’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여행을 천천히 하자는 게 나의 모토이지만 엄연히 게으른 것과는 구별된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 그냥 아무런 계획이 없어도 지도에서 아무 곳이나 찍고 그곳을 갔는데, 심지어 돌아올 방법이 없어도 무조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움직이곤 했는데, 트빌리시에서는 밖을 잘 나가지도 않는다.
어제는 저녁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갔다. 쌀쌀해진 밤거리를 걷기 위해서다. 아니,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고 해야 할까.
좁은 골목을 걸었다. 올드 바쿠보다 오래되지 않은 올드 트빌리시만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훨씬 낡았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참 이상하다. 분명 올드 트빌리시의 가장 중심 거리는 여행자가 늘 넘치고(겨울이라 별로 없다는 건 함정), 이 거리의 끝은
펍과 클럽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건만, 구석진 이곳은 영락없는 시골 풍경이다.
그냥 무작정 나갔으니 목적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케밥을 사들고 유럽피언 스퀘어에 갔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케밥을 물었다. 케밥 한 입 물고, 사람 구경하고, 다시 케밥을 한 입 물었다. 쩝쩝 거리며.
UFO라도 착륙한 이상한 건물, 밀어주는 그네에 깔깔 거리며 신난 아이들 그리고 엄마, 어디선가 초등학교 학예회라도 하는지 단체로 모여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 그들에겐 일상, 나에겐 케밥 물며 구경할 거리였다.
점차 어둠이 내려앉았다. 난 멍하니 강변을 바라보다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내 귀에 꼽았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나 둘씩 밝아지는 조명 사이로 여러 장면이 보였다. 자전거를 가르쳐주는데도 넘어지기 일쑤였던 커플, 아이 손을 잡고 하늘로 붕 띄워 주던 사람, 강변과 조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까지.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음악이 있으면 일상도 특별해진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이미 수십 번은 더 걸었을 올드 트빌리시를 걷고, 또 걸었다. 이제 또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이미 바투미로 결정되었는데도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오늘 쪽지로 날라온 카우치서핑 미팅이 생각났다. 그냥 스팸이나 알림으로 넘어갔던 이 메시지는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초대하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좀 망설이긴 했지만 너무 심심하단 생각에 이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모임이 아니더라도 혼자 펍이라도 갈 생각이었으니깐.
결과적으론 100명이상 모인다는 그 미팅엔 50명도 오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나마 아일랜드 사람이 술을 몇 번 사주면서 나름 재밌게 얘기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아마 여행에서 만난 진짜 동료가 아닌 인의적인 만남이라 그랬던 것이 아닐까?
난
혼자 여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귀찮은 상황이 안 벌어진다. 근데 가끔은 동료가 있는 여행자가
부럽기도 하다. 아마 아르메니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헤어진 후라서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다시 소심한 여행자로 돌아와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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