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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지 1년이 지나 드디어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물론 이집트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또한 종교적으로 보나 중동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이제는 아프리카다.


공항에 도착한 후 정말 감사하게도 평소 카카오채널을 보고 계셨던 교민분께서 픽업차량을 보내주셨다. 늦은 시간 낯선 공항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건 어렵기 마련인데 정말 편하고 쉽게 타흐리르(따흐릴) 광장에 도착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광장에서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 축출을 위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숙소를 찾아 걷고 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지난 늦은 시각이었지만 사진을 찍어달라며 손을 흔드는 이집트인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이른 아침, 다니엘과 다시 만났다. 무려 11개월 만에. 우리는 미승인국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만나 며칠간 여행을 했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다니엘은 몇 달 전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나에게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왔다. 덕분에 전혀 다른 대륙 아프리카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다만 우리는 만난 그날 다시 헤어졌다. 다니엘은 룩소르로 갈 예정이었지만 어차피 남쪽으로 내려갈 나는 당장 룩소르로 갈 이유가 없어, 나중에 다니엘이 룩소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여행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인 파블로와 함께 기차역에서 여러 방법을 알아봤는데 침대칸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쌌다. 딱 봐도 외국인만을 위한 것으로 무려 100달러나 했다. 적당히 일반석에 비해 2~3배 정도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이건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게다가 창구에서는 침대칸을 팔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아예 침대칸 판매창구로 가라는 안내만 한다. 아무리 그래도 100달러를 내고 탈 수 없어 결국 현지인에게 물어 2등석 티켓을 샀다.


이집트에서 오래 머물 것으로 생각돼 유심카드를 구입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숫자를 읽을 수 없었다.


카이로에 머무른 지 딱 하루 만에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당을 찾다가 이집트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은 다른 뜻이 없음을 의미하는 “노 머니” 를 연발했다. 분명 관광객들이 호객꾼에게 하도 시달리니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왔냐는 물음에 다니엘이 미국이라고 하니 자신의 형이 미국에 살고 있다며 무척 좋아했다. 조만간 미국에도 갈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몇 초도 되지 않아 자신의 명함을 주고 싶다고 마침 가게가 바로 앞이니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가니 향수 비슷한 것이 가득했는데 비즈니스는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땐 이미 우리가 눈치챈 후였다. 음료를 주겠다는 말에도 뿌리치고 나왔다. 음료를 대접하는 건 이집트인의 호의라고 말했지만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법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더 웃긴 건 그 다음이다. 다음에도 그냥 길을 묻다가 사람을 만났는데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자신의 형도 미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우리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고, 잠깐 가게를 구경하지 않겠냐는 말에 웃으면서 됐다고 했다. 다른 골목을 걸을 때 또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접근하자 이번에는 “혹시 미국에 형 있지 않아?” 라고 우리가 선공을 날려봤다. 그랬더니 형은 없고 친구가 살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그 뒤로 다니엘은 사람들이 국적을 물을 때면 “캐나다!” 라고 대답했다.


가을에 해당하는 계절이라고 날씨는 더워도 해는 빨리 진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비빔밥처럼 보였던 이것으로 결정했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먹었지만 이집트를 여행하면 꼭 먹는다는 ‘코샤리’였다. 코샤리는 파스타, 콩, 쌀, 튀긴 양파 등에 토미토 소스를 부어 비벼 먹는 이집트 음식으로 한 끼에 천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고추기름을 많이 넣었더니 좀 맵다.


타흐리르 광장에는 아직도 시위(사실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때 쓰였던 철조망이나 콘크리트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다. 심지어 타흐리르 광장의 지하철 입구도 대부분 막혀 있다. 시위가 있었던 당시에는 지하철이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정차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매우 평온하다. 뒤엉켜 다니는 차를 빼곤.


저녁은 정말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카카오채널을 보시고 초대해주신 한국인 분의 집, 정확히 말하면 식당으로 찾아갔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살고 계신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식당을 운영하고 계실 줄 몰랐다. 아무튼 나를 보시더니 왜 이렇게 말랐냐며 많이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그날 정말 많이 먹었다. 밥은 2공기에, 오징어, 게, 과일, 맥주를 흡입하니 나중엔 배불러서 말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초대해주신 분께서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셔서 대신 남편 분과 사진을 찍었다. 이집트에서 27년 동안 살고 계신 분이라 이집트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해주시고,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전화 달라고 하셨다. 감사하게도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까지 잡아주셨다.


카이로는 정말 시끄럽고 복잡했다. 중동을 처음으로 여행한 레바논도 그랬지만, 카이로는 베이루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다. 카이로 대도시권의 인구는 무려 1700만, 이는 아랍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아무튼 이런 거대한 도시에서 무질서를 매일 보게 된다. 거기에 쉬지 않고 울리는 경적소리, 아무데나 버리는 쓰레기가 카이로의 이미지로 더해진다.


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무단횡단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무단횡단은 일상이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무리 큰 도로라고 해도,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가 있다 해도 사람들은 그냥 건넌다. 차가 다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또한 어렵지만, 만약 기다리겠다면 내가 뭔가 바보가 된 느낌이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길을 막 건넌다. 신호등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거의 못 봤다. 심지어 하루 동안 가벼운 접촉사고를 3번이나 본 적도 있다. 카이로 도심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다니엘이 카이로로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이 너무 붕 떠서 이집트 박물관이나 가볼까 해서 갔더니 입구에서 제지 당했다. 가방에 있던 휴대용 포크와 나이프 때문인데 내가 재차 포크라고 보여줘도 버려야 한다고 해서 다시 나왔다. 흉기가 아니라니까.


카이로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지 4일째, 나는 베이루트에서 만났던 후삼을 다시 만나러 갔다. 후삼의 집은 카이로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나세르 시티라 마이크로 버스를 2번이나 타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찾아가기 쉽지 않은 까닭에 주변 사람에게 계속 물어봤는데 이 친구가 나서서 도와줬다.


마이크로 버스는 딱 봐도 오래된 차량이 대부분인데 독일에서 중고차를 수입해 온 모양이다. 독일 번호판이 그대로 남아있다.


베이루트에서 딱 하루 같이 지냈는데 카이로에서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후삼의 집에서 이틀간 지냈는데 딱히 뭘 하지는 않았다. 밀린 사진 정리하고는 그냥 쉬기만 했다. 아무래도 시내에서 조금 먼 이유도 있었다. 카이로 시내로 돌아갈 때 후삼은 마이크로 버스를 타는 방법을 설명해주려다가 이내 자신의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정말 편하고 빠르게 시내로 돌아왔다.


룩소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니엘을 다시 만났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팔라펠을 먹었다. 레바논에서도 봤던 음식으로 콩으로 만든 덩어리를 넣어 만드는데 맛도 괜찮고 가격도 싸서 아침으로 먹기 딱 괜찮다.


하루에 많은 일정을 소화할 것도 없이 딱 하나, 이집트 박물관만 갔다. 원래 박물관은 거의 안 가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니까 무조건 가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상당히 괜찮았다. 다만 미이라와 석조 유적지 한데 모여 있는데 관리가 너무 부실한 것 같다. 습도 조절은 전혀 안 되고 미이라 바로 위 창으로부터 직사광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시대별이나 주제별로 전시물을 구분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잔 후 저녁을 먹으러 갔다. 불고기와 비빔밥 정말 맛있었다.


다시 한 번 맛있는 저녁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밤은 어둡다. 시위가 있었을 당시에는 이곳에 무려 100만명이 모였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냥 데이트 하러 나온 남녀나 심심해서 나온 사람들이 광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집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워낙 삐끼나 사기꾼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투어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나와 다니엘 두 명만으로는 너무 비쌌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기자역에서 내려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정말 쉬웠다. 물론 사기꾼은 있었다. 우리와 함께 갔던 수단인 엘모에게 모든 피라미드를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판다고 했지만 이내 사기꾼임을 눈치챘다. 분명 자신은 집으로 간다고 해놓고 다른 입구를 안다고 그쪽으로 데려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라미드 주변에는 아무나 “티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주지 않았다. 피라미드 내에 경찰이 있지만 어디에나 사기꾼은 가득하다. 그럼에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쉬웠다. 돈이 훨씬 적게 들었음은 당연했다.


물론 피라미드를 찾아가는 것이나 관람은 정말 예상과 달리 순조로웠지만 한 가지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으니 그건 바로 쿠푸왕의 피라미드 티켓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대게 피라미드를 보러 왔으니 안에도 들어가 봐야겠지, 라는 심정으로 구입을 하는데 내부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무려 200파운드나 주고 티켓을 구입했는데 허무 그 자체, 웃음만 나왔다. 당연했다. 피라미드는 무덤이고, 설령 유물이 함께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박물관으로 옮긴 뒤다. 기어서 올라간 내부에는 그저 커다란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무려 피라미드인데 관광객이 정말 없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대실망이긴 했어도 피라미드에 왔으니 우리는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집트를 여행하다 보면 말과 당나귀를 정말 자주 보게 된다.


이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어떻게 세웠을까. 고대 이집트는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을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했고 이는 수학이나 다른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당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긴 하다.


이집트에는 낙타가 몇 마리 없다고 들었는데.


피라미드와 더불어 우리에게 무척 유명한 스핑크스 앞으로 갔다.


스핑크스 앞에는 몇 개의 기념품 파는 곳이 있긴 한데 관광객이 없어 장사가 안 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본 스핑크스는 생각보다 훨씬 괴상하게 생겼다. 발과 몸통은 지나치게 크고 머리는 매우 작다.


게다가 현재 코는 남아 있지 않다.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더 오래 둘러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스핑크스를 마지막으로 하고 나왔다.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피라미드는 내 기대치에 못 미쳤다. 여행을 하면서 거대한 유적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아니면 200파운드나 내고 들어갔던 쿠푸왕 피라미드에 아무 것도 없어 충격을 받았던 것인지.


타흐리르 광장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또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만족감에 무작정 쉬었다. 하루에 하나 보는 것도 이렇게 지치는데 여러 군데를 한꺼번에 가면 얼마나 힘들까.


저녁에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다리를 건너 카이로 타워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타워에 올라가면 카이로 시내의 야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갔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집트는 항상 이게 문제다. 현지인에게는 매우 싼데, 외국인에게는 터무니 없이 비싼 돈을 받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맥주나 마시자며 아래 카페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수단인 엘모도 역시 무슬림이라 알콜이 없는 맥주를 마셨고, 숙소에서 만난 대철이도 맥주가 비싸 무알콜 맥주를 마셨는데 결론적으로는 다니엘이 전부 냈다. 이후 코샤리를 먹으러 갔는데 이건 엘모가 내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도 아닌데 서로 돈을 내겠다고 하다니, 정말 신기했다.


카이로 야경을 못 봐서 조금 아쉽지만 다리를 건너며 맞는 시원한 바람에 만족했다.


다니엘은 아프리카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국 예정이었다. 그래서 함께 알렉산드리아 여행을 시작했다.


이집트에 도착한지 1주일 만에 이동을 하게 됐다.


알렉산드리아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2등석임에도 상당히 깨끗하고 편안했다.


3시간 만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 지중해 바다가 있는(숙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걷다가 우연히 본 간식거리. 생긴 게 우리나라의 엿과 비슷했는데 먹어보니 맛도 엿이었다. 신기해서 입에 물고는 하나 달라고 했다.


알렉산드리아 역시 대도시라 그런지 카이로 못지 않게 복잡했다.


같은 중동이지만 레바논에서는 특별한 복장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집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군고구마도 팔던데 미처 먹어볼 생각을 못했다.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또 하나의 실패 사례로 기억될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나름 유명한 관광지로 도서관이 올라와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갔다. 그런데 여기서도 현지인은 2파운드였으나 관광객은 무려 70파운드. 여기서 생각이 짧았던 게 이 엄청난 거금을 주고 티켓을 구입했다. 옆에 일본인은 고작해야 5파운드에 구입을 했는데 이들은 학생증이 있었다.


아무튼 너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후 들어가봤지만, 그냥 좀 독특한 도서관일 뿐이었다. 아까운 70파운드.


사실 난 이집트에 대해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을 정도로 이집트 여행은 험난을 넘어 최악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끔 삐끼가 괴롭히기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친절했다. 항상 웃으며 “이집트에 온 것을 환영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여행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다니엘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집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너무 많이 들어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친근해 깜짝 놀랐다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받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관심 때문인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먼저 접근하는 이집트인 중에서 순수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관광지에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거리를 걸었다.


이집트의 주차 방법인지, 도로 한 가운데 차가 정차되어 있다. 트럭을 몰던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차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멀리 카이트베이 요새(Citadel of Qaitbay)가 보인다.


바다로 점프하는 소년이 참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이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인데 사실 주변은 쓰레기로 넘쳐난다.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이집트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밟으며 걷고,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바다에서 낚시를 한다. 심지어 지하철 내에 있는 창문을 통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봤다. 내 기준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걷던 도중 커다란 모스크가 보여 들어갔다. 다니엘은 여자라서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거대한 규모의 샹들리에와 높은 천장은 언제나 멋진 모스크의 상징과도 같다.


모스크 내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듯 편하게 주무시고 계시던 어느 할아버지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실 딱딱할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모스크에서 쉬거나 자고 있는 사람을 항상 볼 수 있다.


카이트베이 요새는 다음날 가보기로 하고 우리는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커다란 눈망울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꼭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심지어는 우리를 끌고 가게 안에 있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보라고 했다. 그들도 웃고, 우리도 웃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트램은 참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다.


다음날에도 역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싼 곳이었지만 그래 봐야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 수준. 레바논과 사이프러스의 고물가를 거친 나는 이집트의 저렴한 물가에 그저 행복했다.


이집트에서는 아직도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수송수단이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니엘이 슈퍼에서 감을 들고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등장한 고양이가 감이 놓여진 가운데 앉아 나를 쳐다봤다.


원래는 트램을 타려고 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트램이 다니지도 않았고 역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걸어서 어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갔다.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어쩌면 부탁이 아닌 명령처럼 느껴지는) 가족을 만났다.


카이트베이 요새 앞에 도착했다. 많지는 않지만 이곳 주변에는 몇 명의 관광객이 보였다.


입장료 30파운드를 내고 들어갔다. 도서관을 70파운드나 내고 들어갔기에 뭐든 입장료만 보면 민감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돈 내고 들어가도 될 유일한 볼거리 같았다.


성 내부를 둘러보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그 중에서 우리를 계속 쫓아왔던 아이 3명이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헤어졌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뛰던 도중 한 여자 아이가 넘어졌다. 그런데 울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는 눈물 몇 방울만 흘렸다. 정말 아파 보였는데.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어우러져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만이다. 날씨는 무지하게 더웠다.


알렉산드리아에 왔으니 해산물 좀 먹었다. 배낭여행자에게 해산물은 매우 비싼 음식이기는 했으나 다니엘에게 마지막 날이었고, 한 번쯤은 먹어 보고 싶어 크게 망설이진 않았다.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진열대에서 해산물을 고르면 요리를 해줬다. 이름 모를 커다란 생선과 오징어 그리고 새우를 주문했다. 정말 맛있게 먹은 뒤 화장실에 다녀오니 다니엘이 계산을 해버렸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가끔은 여행자를 위해 자기가 내고 싶다며 말이다.


말과 사람, 차와 트램이 뒤엉켜 있는 동네였다.


마차의 방해에 트램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쉬다가 저녁이 되어서 다시 나왔다. 이제는 동네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길을 건널 때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차가 오건 말건 일단 건너야 한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한 식당은 분위기도 음식도 괜찮아 보였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다니엘은 무척 맛있게 먹었지만 나한테는 그저 그랬다.


숙소 바로 옆에 술을 파는 가게가 있어 수시로 맥주를 사다 마신 탓에 캔이 이렇게나 많이 쌓였다.


11개월 전에 만난 게 인연이 돼서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카타르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는 다니엘과는 달리 나는 카이로로 돌아갔다. 늘 그랬지만 난 다시 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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