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레바논에서 터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곧장 숙소부터 찾아 나섰다. 타슈츄는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첫 번째로 찾아간 호텔이 50리라(약 16달러)로 꽤 비싼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흥정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바로 체크인했다. 장시간 이동에 따른 피로와 허기짐에 그냥 빨리 쉬고 싶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타슈츄에서 적당히 쉬면서 이틀을 보냈다. 레바논에 있다가 터키로 오니 저렴한 물가(레바논에 비해), 깨끗한 거리, 빠른 인터넷 속도에 만족스러웠다. 3주 전 타슈츄에 왔을 때는 그저 페리를 타기 위해 왔을 뿐이라 아무 것도 보지 못했는데 낮에 조금 걸어 보니 적당히 넓은 공원이 있고 가까운 바다로 떠나는 화려한 배가 정박해 있었다. 외국인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을 위한 투어용 배인 것 같다. 상품도 전부 터키어로만 적혀 있다.


다음 목적지는 서남부에 있는 안탈리아(Antalya)로 잡았다. 이스탄불에 있는 프랑스 친구 올가와 만날 도시로 이곳을 잡았는데 출발 전에 구글지도로 거리를 확인해 보니 무려 400km에 6시간 걸린다고 나왔다.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오늘의 여정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지독히도 운이 좋은 여행자였던지 히치하이킹을 시작한지 고작해야 10분 만에 트럭을 탈 수 있었고, 이 트럭은 무려 안탈리아까지 간다고 했다. 아저씨과 말은 안 통했지만 무척 친절해 과일도 사주시고 잠깐 쉬면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물론 거리가 멀어 이동자체는 지루했다.


안탈리아에는 저녁 8시에 도착했다. 터키에서 나름 큰 도시는 이스탄불, 코니아에 이어 이번이 3번째로, 트램이 다니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느라 땀을 많이 흘렸지만 안탈리아에 도착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잠깐 둘러본 도시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안탈리아는 내가 가봤던 도시 중 가장 깔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한 물가가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관광객은 적은 편이었다. 대신 올드타운 주변은 항상 관광객이 있어 딱 적당한 수준으로 붐볐다.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있다. 터키의 모든 돈 앞면에 있는 바로 그 분이다.


올가는 4일 뒤에 온다고 해서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고 주로 숙소에서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안탈리아에 있었던 초반에는 날씨가 더웠는데 에어컨이 있는 싱글룸이라 시원하게 지냈다. 밤에는 혼자 맥주 한 캔을 홀짝 마시다가 골아 떨어졌다. 과연 이게 여행인지 아니면 잉여 짓인지 가끔 분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올가가 오면 같이 여행하자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여행자인데 올드타운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3일째에 거리로 나섰다. 다른 곳도 많았지만 특히 안탈리아에는 국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마침 날씨가 무지하게 좋아(그날 저녁, 그리고 그 다음날은 거짓말처럼 폭우가 쏟아졌다)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안탈리아가 점점 좋아졌다.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올드타운으로 가기 전에 눈에 띄던 모스크에 들어가봤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정말 커 보였는데 내부는 아담했다. 화려한 조명이나 장식도 없다.


모스크에서 자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어야 진짜 모스크를 둘러본 느낌이 든다.


올드타운은 언덕 위에 있어 계속 내리막길이다. 끝까지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오는데 이곳은 선박이 아닌 관광객을 위한 작고 화려한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바로 옆에는 바다를 막아 수영장으로 만들었다.


게을러서 눕고 싶고, 더 계속해서 눕고 싶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갔다. 어차피 다음날이 되면 올가와 함께 둘러볼 곳이니 마치 선심을 쓰는 것처럼 나머지 구역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놨다.


그 자리에서 짜서 주는 상큼한 오렌지 쥬스를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물이 올라오는 바닥을 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꼬마 아이가 그저 귀여웠다.


안탈리아의 쇼핑거리라 할 수 있는 이곳을 몇 번이고 걸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태풍이 상륙한 줄 알았다.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쨍쨍한 하늘을 보여줬다.

 

올가를 다시 만났다. 11개월 전에 아르메니아에서 만났던 올가는 이란과 두바이 그리고 인도를 거친 후 터키로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마침 내가 터키로 돌아오자 이스탄불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애틋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에 있을 때 머리를 아예 밀어버려(단발로 자른 그런 수준이 아니라) 조금 놀랐지만. 올가와 만나자마자 내가 한국에서는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뭔가 심경에 큰 변화가 있는 거라고 말하니 웃으면서 그런 건 없었다고 했다.


마치 내가 안탈리아를 잘 아는 것처럼 올드타운으로 안내했다.


올드타운을 가볍게 돌아본 뒤 우리는 낮술을 하러 카페로 갔다. 낮부터 날씨가 흐리던 게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다만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우리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다음날에는 안탈리아 근교를 여행하려 했으나 또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숙소로 복귀해야 했다. 그런데 1시가 지나자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쨍쨍했다. 안탈리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하기에는 시간이 늦었다고 판단하고 그냥 올드타운 주변을 다시 걸었다.


점심을 먹은 뒤 올드 바자를 돌아봤다. 시장이야 원래 재미있는 공간이긴 한데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를 봐서 그런지 규모가 작게 느껴졌다.


알지도 못하는 여러 향신료와 익숙한 브랜드를 갖다 붙인 옷, 그리고 기념품을 구경하다 나왔다.


우리는 조금 멀리까지 걸었다. 역시 국기를 사랑하는 터키인. 이렇게 많은 국기는 알바니아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해안선을 따라 넓은 공원이 있다. 걷기 좋은 곳이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우리는 잠시 앉아 쉬면서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 관광객을 가득 태운 배가 낮은 파도를 겨우 넘기며 힘겹게 항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저 배에 탄 사람들 멀미 꽤나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는 홍합과 양고기, 그리고 맥주까지 시켜 먹었다. 그래 봐야 1인당 만원 조금 넘긴 수준이지만 배낭여행자와 대학생에겐 꽤 비싼 저녁이다.


터키에서는 항상 고양이들이 애처롭게 쳐다보며 먹을 걸 달라고 조른다.


안탈리아 근처에서 볼만한 곳이라 생각된 아스펜도스를 찾아갔다. 물론 가는 과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아 트램을 타고, 돌무쉬를 타고 세릭까지 이동한 뒤, 다시 돌무쉬를 타고 아스펜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도착한 아스펜도스는 우리 둘 다 만족할 정도로 상당히 괜찮았다.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고 그저 지도만 보고 결정했던 곳이었는데.


여태까지 봤던 로마 원형극장에 비해 상태가 무척 양호하고 또한 거대함을 자랑했다.


아스펜도스를 그냥 내부에서 본다면 다른 원형극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언덕 위에서 본다면 분명 다르다.


주변에 로마시대의 유적지가 남아있어 볼거리가 많다.


지금은 몇 채의 가구가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반대편 산까지 연결되어 있는 다리를 보면 얼마나 번영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원형극장 내에는 관광지라 그런지 음료수가 비쌌는데 밖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니 절반 가격에 시원하고 맛있는 석류 쥬스를 마실 수 있었다. 여기에서 할머니는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당시 터키는 명절인지 축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양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골목 뒤에서 양을 잡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쥬스를 마신 후 안탈리아로 돌아갔는데 올가는 터키, 아르메니아, 이란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해서 그런지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히치하이킹을 했다.


안탈리아에도 관광객은 꽤 있지만 외국인을 보면 반가워하는 터키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수업이 있던 올가는 이스탄불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예약하려 했는데 모든 버스 회사의 좌석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매가 어려운 버스 회사를 직접 찾아가 겨우 한 좌석을 건질 수 있었다. 물론 이스탄불행은 아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했다.

 

버스를 예매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지인 듀덴 폭포를 찾아갔다. 안탈리아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조용한 공원에 폭포가 하나 있을 줄 알았던 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물론 휴일이긴 했지만.


그냥 폭포만 있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는 사이로 걸을 수 있게 해놔서 꽤 괜찮았다. 크로아티아의 호수공원 플리트비체가 떠올랐다고 하면 조금 심한가.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앵무새가 옥수수를 먹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나도 옥수수가 먹고 싶어 하나 샀다. 듀덴 폭포 내에서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오니 역시 절반 가격이었다. 입구 바로 맞은 편에 있는데 안에 있냐 밖에 있냐, 이 차이로 가격이 배로 비싸진다.


안탈리아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에서 잠깐 쉬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밖으로 나갔다. 이스탄불에서도 많이 보였던 길거리 홍합이 여기에도 가끔 보였다. 홍합이 좋다고 했던 올가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달려가 먹기 시작했다.


홍합에는 밥이 조금 들어가 있고 먹을 때마다 레몬을 살짝 뿌려서 준다. 그러면 홍합 껍질을 이용해 숟가락으로 먹듯이 퍼서 먹으면 된다.


비싸 보이는 식당이 많은 우산 있는 거리로 왔다. 여기서 다른 곳보다는 조금 싼 곳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주방장 아저씨는 우리가 한국인과 프랑스인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또한 한국과 터키는 친구라며(사실 ‘형제의 나라’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말도 안 되는 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예상외로 터키에서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 호의적이고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일본과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며. 물론 터키에게 ‘형제의 나라’는 아제르바이잔이겠지만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을 좋아하는 건 맞나 보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8일간 머물렀던 안탈리아를 떠날 때가 왔다.


다음날 올가와 헤어진 후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오로지 육로로 여행하겠다는 나의 똥고집 때문에 레바논에서 터키로 돌아왔는데 아직 페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만난 이집트인이 안탈리아에 페리가 있을 거라고는 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고, 유일하게 인터넷에서 나온 외국인 여행자들의 정보로는 이스켄데룬에 페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이스켄데룬으로 정했다. 다만 이스켄데룬은 700km가 넘게 떨어져 있어 하루 만에 갈 수 없어 일단 메르신까지 가보기로 했다. 말이야 쉽지 메르신까지 가려면 500km를 이동해야 한다.


처음 히치하이킹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그 다음 히치하이킹을 하지 못해 1시간 가량 걷다가 히치하이킹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한 대의 차가 멈췄는데 놀랍게도 메르신까지 간다고 했다. 덕분에 정말 편하게 이동했다.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셀린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바나나를 같이 먹기도 했다.


장시간의 운전을 멈춘 셀린의 아버지는 여기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메르신까지는 200km도 넘게 남은 상황. 어차피 이들의 목적지는 메르신이라 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생선과 맥주를 주문하셔서 비쌀 것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감사하게도 이 가족이 저녁을 사주셨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약 3시간 뒤 메르신에 도착해서다. 이미 10시가 넘었지만 중심지까지 태워주신다고 했던 셀린의 아버지는 한 호텔에서 날 내려주고는 여기서 오늘 자라고 했다. 셀린은 이 호텔의 주인이 아버지 친구라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무척 놀랐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내가 호텔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한 셀린의 아버지가 호텔을 잡아준 거다. 물론 100리라 정도로 아주 비싼 호텔은 아니었지만 하루 평균 100리라도 쓰지 않았던 배낭여행자에겐 호화로운 숙소였다. 정말 감사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챙겨 먹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고작해야 200km 떨어진 이스켄데룬. 페리의 존재조차 모르는데 일단 가고 보자는 대책 없음에 나 자신도 놀랐다.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걷는 도중 어떤 이가 어디까지 가냐고 먼저 물어봐서 아다나까지는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고속도로로 가는 길목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도중 고속버스가 멈춰 나에게 탈 거냐고 물었다. 히치하이킹만 고집할 이유는 없어 이스켄데룬행 버스에 올라탔다.


동쪽 끝 해안에 형성된 이스켄데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여기서 이틀 간 페리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어보고, 현재 운행하고 있는 것 같은 회사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가만 난 왜 안탈리아에 있을 때 전화번호를 못 찾은 건지, 꼭 급할 때만 보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다. 현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사무실에 가서 물어봤지만 작년 9월 이후 페리는 사라졌다. 절망적이었다.


항구 근처에서 본 펠리컨, 꽤 사나웠다.


결정을 해야 했다. 10월 5일에 미국인 친구 다니엘을 카이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나로써는 시간이 부족했다. 1년간 타지 않았던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예약 버튼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일단 비행기를 타더라도 사이프러스(키프로스)에서 탈 예정이니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바다에 떠있는 저 배를 타고 이집트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란한 상황에 이스켄데룬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 같다. 한숨만 푹푹 쉬었으니 여행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당연했다. 저녁에는 가볍게 동네를 걸었다. 동양 여행자는 물론이고 서양 여행자도 없는 곳이라 다들 신기하게 쳐다봤다.


배가 고파서 저녁으로 먹을 발릭에크멕(한국 사람에게는 고등어케밥으로 더 익숙한)을 사먹었다. 기대를 전혀 안 하고 샀는데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게다가 그때는 계속해서 입에 걸렸던 가시도 전혀 없다.


페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내 잘못이 크지만, 실망감을 가득 안고 이스켄데룬을 떠나야 했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클릭)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