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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자전거만 타고 돌아다녔다. '본전을 뽑는다'는 말은 이걸 두고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는데 1달러짜리 가치를 증명이라도 해보라고 재촉하듯이 자전거와 함께 하루종일 보냈다. 아마 그때는 '자전거를 1달러에 하루 빌렸으니 아침부터 밤까지 타야 이득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자니 엉덩이가 괴로워진다. 갑자기 움푹 패인곳을 지날 때면 나도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비포장도로에서 먼지를 들이키며 달리지만 또 어디론가 정처없이 간다는 생각에 앞만 바라봤다. 늘 그런 식이었다. 또 무언가가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라는 막연함뿐이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앉아서 옥수수를 팔던 아이를 볼 수 있었는데 길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먼지가 가득한 곳에 홀로 앉아있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어디선가 '라오스에서는 지갑을 열지 말아라'는 말을 들었다. 라오스에서 지갑을 열다간 손이 지갑속으로 들어와 있을 것이라며 조심하라는 소리였다. 훼이싸이부터 수도였던 비엔티엔까지 이동하며 바라본 라오스는 무척 가난한 나라였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이 나라를 가난한 나라, 그리고 못사는 나라로 규정지어버렸다. 실제로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 물건을 팔기도 했고,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산 위에 지어진 허술한 나무집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라오스는 결코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심지어 구걸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건을 좀 사달라고 조르는 사람은 있었어도 구걸하지는 않았다. 내 눈에 비친 라오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었다. 어떤 이의 말을 듣고 그걸 진짜 믿어버리다니 나 자산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겪은 가난한 나라 라오스는 결코 마음까지 가난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볼 게 없었지만 라오스의 푸근한 인심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또렷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자전거로만 루앙프라방을 돌았다. 하긴 여기에는 교통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뚝뚝이 전부였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교통수단도 자전거 아니면 오토바이였다.


우리는 잠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물 한잔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태연하게 우리 앞에 누워있었던 고양이들이 보였다. 여기 게스트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던 고양이들은 사람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여태까지 보아왔던 고양이들과는 많이 틀렸다.


이 고양이들과 잠시 어울려 놀다가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은 정말 황량할 정도의 공터였는데 이곳에 몇 대의 버스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는 더 황량한 곳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정도면 그나마 버스터미널이라는 구색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가운데에 버스 티켓을 구입하는 곳이 있었고, 구석에는 터미널에는 빠질 수 없는 음식점과 구멍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여기가 터미널이 맞나 싶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버스들은 죄다 현대자동차였다. 라오스에는 유난히 현대자동차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중고차를 많이 들여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골동품과 같은 버스부터 그나마 비교적 최근에 수입한 것인지 깔끔해 보이던 버스도 있었다.

우리는 VIP버스로 예매를 했다. 로컬버스가 가장 쌌지만 에어컨도 안 나오는 장거리 버스는 타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 같았다. 게다가 1000원정도의 가격차이가 있었을 뿐인데 일부러 로컬버스를 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라오스도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쉽게 승려들을 볼 수 있다.


루앙프라방의 거리를 하염없이 달렸다. 뜨겁고, 목이 말랐지만 쉽게 멈추질 않았다. 사람을 보고 거리를 바라보면서 이곳의 분위기를 최대한 느꼈다. 내가 다녀온 곳을 나중에라도 기억이라도 하고 싶어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브레이크도 되지 않았던 자전거를 한 손으로 붙잡고 말이다.


한참을 달리다가 도착한 곳은 루앙프라방의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도 많았고, 특히 서양인들이 많이 보였던 곳이었다. 밤이되면 골목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 형성되는 곳이었는데 항상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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