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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일찍 잠이 깼다. 두꺼운 이불 깊숙히 한기가 느껴지고 창문은 서리가 낀 것처럼 흐릿흐릿해 보이는게 멜번도 역시 남쪽이라 춥다는게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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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10시쯤에 멜번에 도착하였는데 미리 연락을 주고 받았던 명훈이가 마중을 나와줬다. 명훈이는 필리핀에서 같이 학원을 다녔던 동생이었는데 브리즈번에서 보고 몇 달만에 멜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미리 예약했던 단기쉐어로 걸어가면서 명훈이가 멜번에 대해 이것 저것을 설명해줬는데 나는 새로운 곳이라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보통 백팩에서 머무는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백팩도 싼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쉐어를 구하기 전까지 단기쉐어에서 보내기로 했다. 나야 전화기도 제대로 터지지 않았던 배틀로라는 시골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멜번에서 지내고 있던 재준이형이 단기쉐어도 직접 알아봐줬다.

한 밤 중에 짐을 한가득 들고 단기쉐어를 겨우 겨우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방은 너무 작고, 딱 하나 밖에 없는 방에 4명이나 있었지만 어차피 길어야 3일이라는 생각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쉐어생은 아니었고 실제 남매가 살고 있었다.


지난 밤에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기에 밖으로 나가보니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거리에는 차로 가득하고, 높은 빌딩이 줄을 지어있었다. 근데 나는 제대로된 옷도 없다 보니 낮에도 상당히 춥다고 느껴졌다.


멜번의 가장 대표적인 교통수단이 바로 이 트램이다. 도로 위에 있는 철로를 따라 달리는데 차량과 함께 뒤섞여 달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큰 돈과 농장에서 받은 고액의 수표를 은행에 입금시켰다. 아무래도 돈을 가지고 있다간 금방이라도 써버릴거 같아서인데 멜번에 도착한지 딱 하루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어디론가 돈이 샌 느낌이 가득했다.

그 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돈을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포키(슬롯머신)을 통해 4000불을 벌고 농장을 떠났지만 결국 그 돈이 바닥을 보인 것이다. 나는 큰 돈을 번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냥 꾸준히 있었고, 오히려 사과 농장에서는 일을 못해서 남들보다도 돈을 못 벌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된 셈이다.

나중에 돈을 빌려주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친구로부터 돈을 돌려 받았다. 호주에서도 500불은 큰 돈이었고, 나 역시 쉽게 빌려줄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튼 호주에서는 돈을 버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걸 얼마나 아껴서 잘 쓰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명훈이를 만나러 주립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주립도서관을 바라보면 신기한 광격을 볼 수 있는데 도서관 앞에 있는 잔디 공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주립도서관이 외각의 조용한 곳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고, 정말 도시 한 가운데 도로에 차가 빼곡히 다니는 그런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저기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이 작은 공간의 매력은 뭘까? 비둘기와 갈매기 떼와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마냥 신기한 풍경이었다.


명훈이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이 둘은 로빈베일과 메닌디에서 지냈을 때 알았던 재준이형과 은호누나를 만났다. 호주는 물가가 비싸서 남 사주기에 항상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동생이 멜번에 왔다고 하니까 재준이형이 저녁을 사줬다. 오랜만에 소주도 먹어봤는데 멜번은 보통 소주 한 병당 가격이 무려 15불이었다. 다만 이 가게에서는 10불에 팔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오랫동안 알았던 사이인 것처럼 너무도 반가웠다.

사실 멜번에는 몇 주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부분이 많지 않다. 특별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서인지 그만큼 기억나는 부분도 없다고나 해야할까? 유난히 춥다라고만 기억되는 멜번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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