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Killing field)라는 끔찍한 사건을 나는 2007년도에 앙코르왓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되었다. 그러한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욱 끔찍하고 잔혹한 역사였던 것이었다. 그러한 킬링필드를 앙코르왓만 관람하고 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는데 프놈펜에서는 몇 군데에서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킬링필드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뚜얼슬랭이 바로 대표적이었다.
킬링필드의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크메르 루즈라는 캄보디아의 공산화가 이루어지면서 문제의 발단이자 학살자인 폴 포트가 지도자가 되었다. 폴 포트는 자신들의 반대세력인 친 베트남 성향을 학살하거나 격리시키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대규모 양민학살이 벌어져 무려 전체 인구의 1/3인 200만명이 죽었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학살만 200만명은 아니었고 그 당시 베트남 전 미군의 폭격에 의해서 죽은 인구도 그 수에 포함된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 엄청난 학살을 가리켜 킬링필드라 부른다.
킬링필드의 '뚜얼슬랭 박물관'은 전혀 박물관다워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학교였다. 그것이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에는 감옥으로 변했고, 현재는 이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입장료는 미국 달러로 3불이었다.
으스스해보였지만 외관으로 보면 정말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비극의 그 현장이란 말인가?
나는 정면에서 보이는 좌측 건물부터 들어가봤다. 뚜얼슬랭 박물관은 건물이 총 3개로 좌측부터 보게 되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순서대로 볼 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지하게 더운 캄보디아의 날씨인데 이 곳만큼은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학교였던 이 곳은 가르치던 장소에서 사람을 가두고 고문하는 장소로 변해버렸던 것이었다.
이 끔찍한 장소에 너무나 어울리는 차갑디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 외벽... 이 곳에서 학살은 이루어졌다.
이 곳은 학교였다.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듣기로는 여자들이 이 곳에서 무섭다고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곳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달랑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이 곳에서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창문을 바라보니 정말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 보였다. 이 얼마나 이질적인 공간이란 말인가? 밖을 내다보면 바로 코 앞에서 자유가 느껴지는데 안에서는 학살이 벌어지는 끔찍한 감옥이라니 정말 크메르 루즈의 잔혹함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알아보기도 힘든 오래된 흑백 사진이었지만 그들이 죽어간 모습은 끔찍하기까지 했다.
나는 좌측 건물을 다 보고 내려왔다. 이 곳은 그래도 유명 관광지인 탓인지 꽤 많은 외국인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여행자라면 여행자인데 이 곳에서 여행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밖에 내려왔을 때 한 눈에 보이던 이 것들이 무엇인지는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난 그냥 조형물인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안내판을 봤을 때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커다란 항아리로만 보이던 이 것도 바로 고문용 도구였던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나는 '이런 미친....' 반쯤 욕이 섞인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 가운데 있던 건물로 들어가봤다. 그랬더니 그 당시 수용되고 있었던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 메워져있었다. 나이가 제법 있었던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렇게 어린 아이들까지 있었던 것이었다.
집단 묘지에서 발굴되었던 해골들은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 곳은 프놈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가볼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가보지는 못했다.
이 것도 혹시 고문용 도구였을까?
밤에 이 곳에 혼자 들어올 수 있다면 그야말로 공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보니 넓직한 공간이 나왔고 이 곳에서는 각 종 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당시의 모습을 말해주는 사진 몇 장은 정확히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고 봤던 시가 있었다. 시는 정말 길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No로 시작했다. 그 당시에 절박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시였는데 얼마나 끔찍한 시기였는지는 읽어봐도 알 수 있었다. 크메르 루즈가 들어선 이후 이들은 공산화를 이루겠다면서 화폐개혁,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이주, 그리고 지식인을 학살하는 것 등 극단주의적인 정치가 만행되었었다. 난 이 시를 읽으면서 캄보디아인들의 아픔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옆으로 이동하면 나오는 곳도 역시나 감옥이었다. 원래 학교였던 이 곳을 이렇게 벽돌로 쌓아서 1인실의 감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은 나무로 된 1인실 감옥이었다.
내 기억 상으로는 암흑의 시기 이후에 여행을 했던 외국인들의 기행기였던 것 같다. 그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We must learn from history so something like this never happens again(우리는 이 역사를 통해서 절대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걸 배워야 합니다)'
이 박물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참상의 현장의 모습을 기록한 곳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끔찍한 고문을 재연한 그림들과 그 당시 사용했던 고문들을 전시해놓은 곳이었던 것이다.
이 끔찍한 그림들은 비록 사진은 아니었어도 쉽게 바라보기 힘들정도였다.
이것은 과연 무슨 용도였을까?
바로 옆에는 이 것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알려주는 그림이 있었다.
당시에 학살을 당했던 사람들의 유골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가장 최우측에 있었던 건물의 3층에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하루에 상영하는 시간이 정해져있었는데 마침 내가 갔을 때 상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킬링필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좀 될까해서 올라가서 관람을 했는데 사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보다가 중간에 나와버렸다.
2층에는 아픔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는 캄보디아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내가 베트남 호치민에서 전쟁박물관을 갔을 당시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왜 캄보디아인들이 이런 비극을 당해야 했을까? 하지만 그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남아있는 자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자들에게 더 밝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역사를 지닌 뚜얼슬랭 박물관을 걸어나오는데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져있었다.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학교 건물이었던 이 곳을 바라보았다.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이 곳에서의 학살이 정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지난 여행기 > 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캄보디아의 휴양도시 씨하눅빌 (54) | 2010.11.14 |
---|---|
지도없이 프놈펜 거리를 헤매다 (46) | 2010.11.14 |
나에겐 적응이 되지 않았던 한인업소 (48) | 2010.11.14 |
프놈펜의 야시장을 가다 (48) | 2010.11.14 |
캄보디아에서 다시 만난 인연 (55) | 2010.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