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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밖으로 나섰다. 상민이형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어디론가 나갔기 때문에 혼자서 안에만 있는 다는 것은 너무나 따분했다.


이제는 좀 친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어색해 보이는 프놈펜 거리로 나서자 수 많은 오토바이들의 물결이 보였다. 그만큼 캄보디아의 사회 기반시설은 미비했다. 제대로 된 인도가 갖춰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나로써는 거의 도로 위를 걸어다녀야 했다.

걸어다니는 중간 중간마다 모또(오토바이 택시를 가리켜 모또라 부른다)가 멈춰서서는 어디로 가냐고 묻기도 했다. 돈이 없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하지만 이 판단이 결과적으로는 무식한 짓이기도 했다.


나는 오로지 나의 기억을 더듬어서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길을 건너서 그대로 직진하면 리버사이드쪽으로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음... 근데 이걸 어떻게 건너야 하지? 프놈펜에는 신호등이 분명 있었지만 신호등만 믿고 길을 건너거나 운전하기에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신호위반은 기본이고 역주행도 서슴찮게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토바이 틈을 요리 조리 빠져나가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을 걷고, 다시 1시간이 지나자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캄보디아에서 길을 안내하는 서비스가 잘 되었을리가 없다. 그제서야 나는 지도 없이 프놈펜의 거리를 나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작정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도 없이 나서다니 약간은 미친짓이었다 보다.

거리에는 온통 캄보디아인들뿐이고, 여행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거리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깜깜했다. 필리핀 세부에서의 으슥한 분위기가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사실 캄보디아가 안전하다고 느껴진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걱정도 하며 걸어다녔다. 나는 혼자이고 주변에는 여행자는 전혀 보이지도 않은 상태에다가 캄보디아인들도 별로 없었던 으슥한 곳도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온 길을 더듬고, 간간히 보이는 영문 표지판을 보면서 올바른 길로 찾아갔다. 나는 내가 원하던 리버사이드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계속 남쪽으로 갔었던 것이다. 결국 길을 돌려 위쪽으로 올라갔다. 정말 2시간만에 프놈펜의 중심부로 올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제대로 걸어왔다면 30분도 걸리지 않았을텐데 한참을 헤매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한 공연장 비슷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이 있어서 나도 껴서 구경했다. 그런데 여기에 태극기와 캄보디아 국기가 함께 걸려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행사를 하고 있었던듯 보였고, 간간히 '안녕하세요' 라든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Rise up Cambodia'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후원을 하거나 무슨 행사를 주관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캄보디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결국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구경만 했다.


아마도 캄보디아의 가수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공연같았다. 알아듣지는 못하니 오래 있기는 힘들고 주변에 한국 사람도 안 보이니 나는 여기를 빠져 나왔다. 확실히 캄보디아에서 한국의 입지가 매우 높아 보이긴 했다. 베트남도 그랬는데 조만간 캄보디아도 베트남과 비슷한 상황으로 변할 것 같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을 때 봤던 과일가게들이 보였다.


열대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이 한 가득 쌓여있었다. 하지만 두리안은 혼자 사먹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두리안의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이번에는 다양한 동남아의 열대 과일을 만날 수 있었다. 거리에 일렬로 늘어선 과일들을 보니 저절로 침이 고였다. 특히나 나는 열대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망고스틴'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걷다가 한 가게에 멈춰서서는 얼마냐고 물어봤다. 1kg에 2달러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좀 깎아달라고 하니까 강한 어조로 안 된다고 했다.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어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5거리가 나오더니 여기에 한식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때마침 배가 너무 고프기도 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상당히 아담한 편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를 비롯해 자녀들이 가게에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보면서 가장 싼 음식을 주문을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망고스틴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보통 2달러정도 한다고 했다. 아까 그 가격이 적정 가격이 맞았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까 조금은 놀라시면서 밤에는 위험할텐데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지도도 없다니까 한인잡지에 있는 지도를 찢어서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밥을 먹고 조금 쉬니 완전 살 것 같았다. 거의 3시간을 넘게 걸어다녔으니 지칠만도 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리버사이드쪽으로 걸어가려다가 지도를 보니 너무 멀었다. 모또를 잡아타고 갈 수도 있었으니 이미 날은 너무나 깜깜했고, 가는게 슬쩍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가 되돌아와서는 나는 방금 전의 과일가게로 갔다. 아줌마와 꼬마 아가씨는 내가 다시 돌아오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망고스틴을 사겠다고 하자 싱글벙글 웃으면서 담아줬다.

원하는 망고스틴도 가득 샀으니 곧바로 모또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모또를 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면 된다. 모또 운전수가 따로 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냥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모또였던거 같다. 어차피 자신은 이동하다가 사람이 있으면 돈을 버는 것이니 안 할 이유 없었던 것이다.

한 아저씨가 나에게로 왔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면서 KLC(한국어교육센터)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로 애석하게도 이 아저씨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새삼 느끼는 것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앙코르왓 주변에 있을 때야 영어가 통했던 것이지 이런 일반인에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것은 정말 무리였던 것이다. 아저씨는 바로 옆에 있는 주유소로 우선 가자고 했고, 다행히 주유소 직원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렇게 영어로 내가 가고 싶어하는 위치를 말해주고 지도를 보여주었더니 직원은 다시 아저씨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사실 2달러도 무척 비싼 편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2달러로 흥정을 한 뒤에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달렸다. 오토바이를 타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분 좋게 2달러를 주려고 하자 그 아저씨의 행동이 가관이었다. 5달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07년도에 캄보디아에서 돈 때문에 싸운 일이 생각이 나서 너무 화가 났다.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리냐며 2달러 받으라고 하니 받지 않으려고 했다.

화가 나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 쯤 상민이형이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데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디서 타고 왔냐고 지도에서 짚어줬다. 그랬더니 상민이형이 크메르어로 화를 내며 뭐라고 말을 했다. 나야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대충 이렇게 가까운데서 왔는데 무슨 소리냐며 따졌고, 당장 2달러 받고 가라고 했다. 이 아저씨는 그제서야 수그러들면서 1달러라도 더 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상민이형은 내가 가지고 있던 2달러를 그 아저씨에게 건내주면서 가라고 하니 그제서야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실 2달러도 거리에 비해서 무척 아까운 돈이었다.


우리는 맥주 한잔 마시기 위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리버사이드로 향했다. 리버사이드는 론리플래닛에서도 중심거리라고 소개할 정도로 외국인들이나 여행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는 가격도 좀 더 비싸기도 하고, 여행자를 위한 숙소나 음식점들이 많은 편이었다.


우리는 어느 바에 들어가서 맥주 2잔 정도 마시고는 돌아왔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그런지 너무나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