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쉐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미얀마의 거의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야외 테라스로 가기 전에 주인 아주머니는 오물렛, 계란후라이, 스크럼블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항상 미얀마에서 먹은 아침은 서양식이라 그런지 메뉴가 똑같다.
2층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앉아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밥을 먹고 있을 때 마시모와 바라밤이 왔다. 이탈리안 커플 마시모와 바라밤은 내가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만났던 아주 재미있는 인연 중에 하나였다. 아무리 낭쉐가 좁다고 하더라도 약속도 하지 않은 채 같은 숙소에 묵을 확률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옆에는 조금 덩치가 있었던 서양인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전날 인레호수 부근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영어로 대화를 하지 않고, 이탈리아어로 마시모와 바라밤과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를 했을 때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가다가보니 카누를 탈 수 있었고, 자신은 하루종일 카누를 타고 놀았다는 것 뿐이었다.
잠시 후 이른 아침이었지만 마시모와 바라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이들은 바로 양곤으로 향해야 했고, 이후 태국의 남부쪽 바닷가로 간다고 했다.
"어... 야니 그... 이메일 주소 잃어버리지 말라고. 잘 가지고 있지? 로마에 오면 꼭 연락해야돼."
나보다도 영어가 서툴렀던 마시모는 더듬거리면서 말했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계속 만났기 때문에 또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은 이제 악수와 함께 끝이 났다. 3번, 4번 계속 만나긴 했지만 나 역시 인레호수를 끝으로 양곤으로 돌아가면 미얀마 여행은 끝이 나고, 더이상 이들과 만날 도시는 없었기 때문이다. 새삼 여행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래 카운터로 내려가 인레호수 투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오늘은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투어 예약은 전날 해야하는데 이미 투어 참가자들은 다 떠난 상태였다고 했다. 내가 여러가지 질문을 했는데 이 아주머니는 정말 퉁명스럽게도 알아서 찾아가보라는 말만 했다. 정말 불친절했다.
우선 강가로 가보기로 했다. 강으로 가니 배가 많이 떠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인레호수에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무려 12000짯을 부르는데 조금 부담이 되었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이런 투어를 할 때가 가장 문제였다. 보통 여러 사람이 보트를 타면 15000짯에 갈 수 있는데 나는 혼자라는 이유로 12000짯을 혼자 내야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돌아섰다.
그래서 그냥 거리를 걸었다. 뭔가 할일이 없을지 찾아다니는 것처럼 걷기만 했는데 어느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 아저씨는 무슨 꿍꿍인지 궁금해 하기도 전에 나에게 인레호수 투어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하긴 나같은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오는건 이런 이유밖에 없을테니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12000짯을 부르다가 내가 비싸다고 하니 10000짯으로 깎아줬다. 원래는 내가 망설인 이유는 12000짯을 혼자 내기가 부담스러워 다른 여행자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마시모와 바라밤이 떠나고, 아는 친구들이나 적당히 사람을 찾는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레호수 투어는 하긴 해야겠으니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나와 같이 걸으면서 잘해주겠다고, 또 좋은 곳으로 안내해주겠다는 설명을 했다. 게다가 원하면 일몰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이 아저씨의 사탕발린 말을 들으면서 강가로 돌아왔다. 결국 인레호수 투어를 하긴 하는구나.
그런데 막상 투어를 시작하려고 보니 이 아저씨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 데리고 가준다고 한다. 아니 이건 얘기가 틀리잖아! 아저씨는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말을 했던 사람과 틀린 아저씨의 아들이 10000짯만 받고 좋은 곳을 데리고 가 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쨋든 출발했다. 이 보트는 뒤에서 스크류를 가동시켜 물에다가 담구면 달리는 그런 단순한 보트였다. 심지어 가끔 갸우뚱하는 보트라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보트는 태국이나 라오스에서도 심심치않게 보던 것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보트를 타니 날씨는 무척 쌀쌀했다. 혹시나 몰라서 겉옷을 가지고 왔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옷을 입어도 추위가 내 몸을 파고들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레호수 부근에서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이 호수가 중요한 거점, 혹은 교통로로 활용이 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레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빨래도 하고, 수영도 하며, 부족한 물자를 나르는 그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인레호수는 정말 바다처럼 넓고 거대했다. 보트를 타고 한참을 가니 좁은 강에서 거대한 인레호수가 펼쳐졌다. 마치 인레호수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았다.
보트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인레호수를 가로질러 갔지만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사실 내가 여행했던 시기는 동남아의 건기였는데 그 말은 인레호수가 가장 좁고 작을 때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레호수는 우기가 되면 길이 22km, 폭 11km로 더 거대해진다.
인레호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한국에 와서 이들의 모습을 담았던 사진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미얀마는 알게모르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인레호수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가장 신기한 것이 바로 발로 노를 젓는다는 점이다. 손으로 노를 젓기도 힘든데 어떻게 발로 노를 젓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서서 발로 노를 저으면서 호수에 떠 다니는 물고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가 호수인지 바다인지 혹은 강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처럼 하늘과 가까웠던 호수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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