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행 버스는 정말 무지하게 오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버스 티켓에는 양곤행 버스가 3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적혀 있었고, 내 친구들은 2시 반으로 적혀 있었다. 시간대가 틀려서 친구들이 먼저 버스를 타고 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시가 되어도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같은 버스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버스는 무려 3시 반에 도착을 했다. 누군가 뛰어와서는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고는 버스에 태웠는데 문제는 나와 내 친구들과는 서로 다른 버스였던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헤어짐이라 양곤에서 보자는 말만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내가 탔던 버스 안에는 외국인이라고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 이번에도 나 혼자 외국인인 버스에 올라 탄 것이었다. 양곤까지는 대략 15시간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그 버스에는 외국인들이 꽤 올라탔는데 어떻게 내가 타는 버스에는 전부 미얀마 사람만 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하기만 했다.
버스는 껄로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쉔냥에서 껄로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아마 양곤으로 가는 길이 껄로를 지나야 있는 듯 했다. 당장은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말이다. 도로야 정말 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포장 상태는 엉망이었다. 애초에 미얀마에서 안락한 승차감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긴 했다.
2시간정도 달리던 버스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멈춰섰다. 여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할 생각인가 보다. 버스에 있기엔 너무 답답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때는 무조건 내렸다.
버스 밖은 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간단한 간식거리나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들 한 두 봉지씩 구입했다. 주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른 버스에서 크리스챤, 마싯다, 카를로스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와 다른 버스를 타기는 했지만 어차피 목적지가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만 혼자 버스에 탄 것이 좀 억울하기도 했는데 그쪽 버스는 어떤지 조금 궁금했다.
"너네 버스는 어때? 여행자는 좀 있어? 우리 버스에는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뿐이라고!"
"하하하... 우리 버스에도 많지는 않은데 우리빼고 3~4명뿐이야."
마싯다는 벌써 지루한지 양곤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글쎄 책에서 보니 약 16시간 걸린다는데?"
16시간이라는 말에 마싯다는 벌써부터 질린다는 소리를 했다. 우리는 양곤에서 다시 보자면서 손을 흔들고는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정말 지루한 버스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버스는 이제 산 위를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오지 않았는데 버스는 잠시 후 멈춰섰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지켜보기만 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버스는 주유를 하러 공터에 들어갔던 것이다. 제대로 주유소가 갖춰지지 않은 것은 당연했지만 저런 통에 기름을 채워 넣는 모습을 보니 새삼 재미있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버스는 다시 달렸다. 아니 달리던 것도 정말 잠시였다. 산 위에 있던 도로는 정말 좁았는데 바로 옆을 바라보니 완전 낭떠러지였던 것이다. 그정도라면 다행일테지만 마주 오는 차량이 있으면 양쪽에서 멈춰서야 했다. 아주 천천히 아슬아슬하게 도로의 반을 나눠가지며 지나쳐야 했는데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가지며 지켜봐야 했다. 그 때부터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수없이 운전을 했던 이 아저씨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을 지켜보며 태연하게 잠을 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찔하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맞은편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트럭이 왔다. 다시 버스는 기어가다시피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산 위에서 수 많은 행렬을 맞이하며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계속 지켜봐야 했다.
점점 주변의 풍경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깜깜해지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을 지나친 낯익은 빨간 버스가 보였는데 다름 아닌 카를로스, 크리스챤, 마싯다가 타고 있었던 그 버스였던 것이다.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지 길 위에서 주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시간가량 더 갔나 보다. 정말 산 위에서 몇 시간을 달린 뒤 내려온 평지가 반가워졌을 때 휴게소에 도착했다. 마침 너무 배고파서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휴게소는 아주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려고 하니 다른 사람을 불러줬다. 잠시 후 나에게 온 꼬마 아가씨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는지 아주 능숙하게 주문을 받았다. 내가 선택한 음식은 미얀마에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이었다. 휴게소라면 시간도 없고, 빨리 허기를 채워야 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
볶음밥은 금방 나왔다. 맛있게 먹고 있을 무렵 휴게소 안으로 들어온 금발머리의 크리스챤이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크리스챤은 내 앞 자리에 앉아서는 음식이 맛있는지 물어보고 자신도 주문을 했다. 이어 마싯다와 카를로스도 모습을 드러내더니 내 옆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너네 아까 무슨 일 있었어? 아까보니 차가 멈춰 서있던데?"
"진짜 어이없었지. 세상에 타이어가 펑크 났지 뭐야."
서로 그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며 웃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일찍 수리가 되었는지 금방 왔다. 그들은 30분이나 멈춰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했다.
밥을 정신없이 먹고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몰라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 버스에는 외국인이라고는 나뿐이었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들과 인사를 대강하고는 버스에 탔다. 어차피 우리는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만나리라는 아주 당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완전한 어둠속에서 버스는 달리고 달렸다. 에어컨 덕분에 버스 안은 거의 냉동차나 다름없었다. 이어폰을 꼽고 이번 여행을 하며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던 노래를 들었다. 왠지 이 노래가 내 상황과 너무 잘 어울렸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그런지 아니면 세상 앞에서 나약한 나의 존재가 드러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가사를 곱씹어 본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일까? 어느덧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다가 일어나보니 버스는 다시 멈췄다. 아마 2시간이나 3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지난번 양곤에서 바간을 올라갔을 때처럼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관문에 도착한 것이다.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장소였다. 외국인은 마치 국경을 넘는 것처럼 여권을 제시하고 목적지를 말해야 했다.
외국인은 따로 사무실과 같은 장소로 움직였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부시시한 모습을 한 마싯다를 볼 수 있었다. 마싯다는 거의 투정을 부리듯이 나에게 말했다.
"깊이 잠들었는데 정말 미칠지경이야. 거기다가 난 지금 얼어죽을 것 같다고!"
사무실에 들어가 여권을 보여주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대충 시간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 늦은 새벽이었다. 양곤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시 추위와 불편함을 견디며 겨우 잠이 들었다. 졸다가 정신을 차려도 다시 버스 안이었고, 다시 졸다가 정신을 차리면 작은 동네가 보이는듯 했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이 지나고 도로 주변 가로등의 밝기가 유난히 밝아짐을 느꼈다. 여전히 난 비몽사몽이었던 상태였지만 양곤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공터에 버스는 들어섰는데 이미 그 공터에는 수많은 버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난 이곳을 왔었다. 이 복잡하고 버스로 가득한 이 공터가 바로 양곤 버스터미널이었다.
내 생각보다 이른 시각이었던 새벽 5시에 양곤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난 친구들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주변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양곤 버스터미널은 무지하게 넓어서 누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옆에서 자꾸 택시 아저씨가 와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봤지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이 많은 버스 회사들 중에서 어느 버스가 내 친구들이 탔던 버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버스가 나보다 일찍 도착했는지 늦게 도착했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건가?'
30분동안 그들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씁쓸한 마음을 가진채 택시를 탔다. 늦은 밤에 도착한 양곤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했던 친구들과 헤어지니 여간 기분이 찜찜한게 아니었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우리는 만났기 때문에 양곤에서도 당연히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헤어지다니 너무 허무했다.
술레 파고다에 도착한 뒤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황금빛으로 물든 술레 파고다가 내 눈 앞에 보였다. 멍하니 술레 파고다만 바라보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자 다시 혼자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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