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브로모 화산으로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다. 브로모 화산은 투어를 통해서 갔는데 족자카르타에서 브로모 화산과 이젠 화산을 거쳐 발리까지 데려다 주는 교통편과 2일 묵게 되는 숙박, 그리고 브로모 화산에서 타게 될 지프가 포함되어 있었다. 족자카르타에서 보통 브로모 화산만 보고 발리로 가는 1박 2일 투어가 가장 인기가 많은데 나는 이젠 화산까지 볼 수 있는 2박 3일짜리 투어를 예약한 것이다.
출발하기 직전 우리가 탈 밴이 보였다. 함께 갈 여행자가 많은 탓에 총 두 대의 밴이 있었다. 앞에 있던 밴에 대부분의 외국인이 탔는데 누구인지 몰라도 커다란 서핑보드를 밴 안에 싣고 있었다. 세상에 서핑보드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이거 완전 민폐중에 민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얼핏보면 아시아인처럼 보였던 한 남자가 주변 친구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 친구가 서핑보드의 주인인가 보다.
내가 탔던 밴에는 프랑스 여인 2명만 탔다. 처음에는 어색하니 간단한 인사만 하다가 나중에 간간히 대화도 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이름은 마욤과 임마누엘이라고 했는데 친자매였다.
지도를 미리 봐서 멀다는 것은 알았지만 브로모 화산까지는 정말 지겹도록 달려야 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하루를 차 안에서 꼬박 보낼 정도였으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족자카르타를 벗어나 계속 달렸다. 근데 인도네시아도 운전하면서 계속 삐삐거리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경적소리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항상 듣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운전하던 아저씨의 수시로 울린 휴대폰 벨소리가 너무 웃겼다. 뭔가 천박하면서 요란한 벨소리는 브로모를 가는 내내 울렸는데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그 소리를 따라하면서 웃곤 했다.
잠깐이었지만 쉬어가려는지 어느 주유소 앞에서 정차했는데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벌써 지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서니 그리 쉰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였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밴에 탔는데 에어컨은 잘 나오지 않아서 밖의 온도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또 몇 시간을 달렸다. 여전히 한적하고 좁은 도로를 달렸고, 도로 옆에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2시가 넘었을 무렵 어느 한 식당 앞에서 멈췄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고 했다.
내가 주문했던 음식은 인도네시아식 볶음면인 미고랭이었는데 무려 4만 루피아나 했다. 너무 비쌌다. 역시 여행자를 대상으로 비싸게 파는 음식점이었다. 아마 이런 곳이면 똑같은 음식이라도 현지 사람과 다른 가격을 책정할지도 모른다.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인도네시아 글자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맛은 괜찮았다. 마욤과 임마누엘이 먹었던 음식이나 내가 먹었던 미고랭이나 혹은 꼬치도 꽤 맛있었다. 배고파서 눈앞에 있던 미고랭은 순식간에 해치웠다.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약 1시간 쉰 후 또 다시 브로모 화산으로 달렸다. 밥을 먹었으니 저절로 잠이 들었는데 자도 자도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말 지겨웠다. 근데 그때부터 우리는 갑작스럽게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재밌게도 프랑스인 마욤과 임마누엘에게 369게임과 베스킨라빈스를 알려주고 같이 게임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이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었고, 벌칙이 없다 보니 끝나는 시점이 애매해 게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게임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프랑스말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말을 알려주고, 그녀들은 프랑스말을 알려줬는데 꽤 재밌었다. '봉쥬르'가 프랑스 인사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봉쥬르흨'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발음이 무척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끼리 놀고 있을 때였다. 족자카르타에서 출발한지 무려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조용히 운전만 하던 아저씨가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브로모!"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모두 오른쪽을 바라봤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둠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가 브로모란 말이야? 그 와중에 임마누엘은 "뷰티풀!"이라는 말을 던져 우리를 또 웃게 만들었다. 다들 계속 웃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때 상황이 생각나 한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밤 8시 반, 프로볼링고에 도착했다. 족자카르타나 수라바야 등지에서 투어로 오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현지 회사와 연결된다. 한마디로 프로볼링고가 브로모 화산 투어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짐을 다 내리고, 족자카르타에서 받은 영수증을 여기 투어 회사에게 제출했다.
이제부터 거의 트럭같았던 낡은 버스로 갈아탔다. 아직 브로모 화산에 도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는 산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어두웠고, 불빛도 없었다. 무려 2시간을 달리고서야 거의 정상에 있었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족자카르타에서 예약할 때부터 알았지만 우리가 묵게 될 숙소는 시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짝 문제가 생겼다. 원래 안내해줬던 방은 꽤 괜찮았는데 나중에 바꿔준 방은 여러 면에서 별로였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봤던 극악의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 화장실도 6명이서 같이 쓰는 공용에다가 난방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아까 그 방이 아닌 왜 이런 방을 우리에게 제공하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차갑게 대했다.
이미 12시라 어쩔 수 없는 것을 우리도 안다.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화가 난 상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의 상태보다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마욤과 임마누엘은 피곤한지 적당히 항의하다가 들어가 잤고, 우리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봤다. 이런 깊은 산에 가로등이 있을리 만무하다. 브로모 화산이 이 근처에 있다면 보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추웠다. 여기가 얼마나 높은 곳인지 짐작도 되지 않은데 거의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 할만큼 바람이 차가웠다.
조금만 내려가봤는데 다른 숙소인 요시가 보였다. 사실 숙소를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냥 요시에 들어가서 대충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이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길래 일단 허기라도 달래고자 했다.
식당은 은은한 조명과 나무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탓인지 분위기가 아늑해서 좋았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식사는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그것도 4시에 일어나서 브로모 화산을 올라가야 하는데도 맥주를 마셨다.
내 옆에는 노트북을 하고 있던 외국인이 한 명 있었는데 잠깐 대화를 해보니 슬로베니아 사람이라고 했다. 다음날 브로모 화산에서 잠깐이지만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앞에는 어느샌가 대화를 하게 되었던 인도네시아 커플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나보고 일본 사람이냐고 묻길래 난 그 사람이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
정말 추웠지만 맥주를 마시면서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친구는 이슬람교라고 했는데 결코 이슬람교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과격하거나 테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인도네시아에 머문다면 이슬람교가 그런 종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사진도 한장 찍었다. 이 친구가 이 사진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지 갖고 싶다했다. 그래서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면 나중에 꼭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사진을 보내주긴 했는데 잘 받았는지 답장이 오지 않아 모르겠다. 아무튼 늦은 새벽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좀 피곤해졌다고 생각되어질 때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이미 새벽 1시를 훌쩍 넘겨 고작해야 2~3시간 잘 수 있었다. 게다가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좀 찝찝했다. 그래서 새벽 3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씻고 나가려는 다짐을 했다.
너무 추워 옷을 다 입고, 침낭까지 덮었다. 비록 여름용 침낭이었지만 인도네시아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불을 안 주는 경우도 많아 무척 유용하게 사용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누우니 바로 잠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피곤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출발하기 직전 우리가 탈 밴이 보였다. 함께 갈 여행자가 많은 탓에 총 두 대의 밴이 있었다. 앞에 있던 밴에 대부분의 외국인이 탔는데 누구인지 몰라도 커다란 서핑보드를 밴 안에 싣고 있었다. 세상에 서핑보드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이거 완전 민폐중에 민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얼핏보면 아시아인처럼 보였던 한 남자가 주변 친구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 친구가 서핑보드의 주인인가 보다.
내가 탔던 밴에는 프랑스 여인 2명만 탔다. 처음에는 어색하니 간단한 인사만 하다가 나중에 간간히 대화도 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이름은 마욤과 임마누엘이라고 했는데 친자매였다.
지도를 미리 봐서 멀다는 것은 알았지만 브로모 화산까지는 정말 지겹도록 달려야 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하루를 차 안에서 꼬박 보낼 정도였으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족자카르타를 벗어나 계속 달렸다. 근데 인도네시아도 운전하면서 계속 삐삐거리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경적소리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항상 듣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운전하던 아저씨의 수시로 울린 휴대폰 벨소리가 너무 웃겼다. 뭔가 천박하면서 요란한 벨소리는 브로모를 가는 내내 울렸는데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그 소리를 따라하면서 웃곤 했다.
잠깐이었지만 쉬어가려는지 어느 주유소 앞에서 정차했는데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벌써 지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서니 그리 쉰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였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밴에 탔는데 에어컨은 잘 나오지 않아서 밖의 온도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또 몇 시간을 달렸다. 여전히 한적하고 좁은 도로를 달렸고, 도로 옆에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2시가 넘었을 무렵 어느 한 식당 앞에서 멈췄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고 했다.
내가 주문했던 음식은 인도네시아식 볶음면인 미고랭이었는데 무려 4만 루피아나 했다. 너무 비쌌다. 역시 여행자를 대상으로 비싸게 파는 음식점이었다. 아마 이런 곳이면 똑같은 음식이라도 현지 사람과 다른 가격을 책정할지도 모른다.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인도네시아 글자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맛은 괜찮았다. 마욤과 임마누엘이 먹었던 음식이나 내가 먹었던 미고랭이나 혹은 꼬치도 꽤 맛있었다. 배고파서 눈앞에 있던 미고랭은 순식간에 해치웠다.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약 1시간 쉰 후 또 다시 브로모 화산으로 달렸다. 밥을 먹었으니 저절로 잠이 들었는데 자도 자도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말 지겨웠다. 근데 그때부터 우리는 갑작스럽게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재밌게도 프랑스인 마욤과 임마누엘에게 369게임과 베스킨라빈스를 알려주고 같이 게임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이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었고, 벌칙이 없다 보니 끝나는 시점이 애매해 게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게임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프랑스말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말을 알려주고, 그녀들은 프랑스말을 알려줬는데 꽤 재밌었다. '봉쥬르'가 프랑스 인사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봉쥬르흨'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발음이 무척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끼리 놀고 있을 때였다. 족자카르타에서 출발한지 무려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조용히 운전만 하던 아저씨가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브로모!"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모두 오른쪽을 바라봤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둠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가 브로모란 말이야? 그 와중에 임마누엘은 "뷰티풀!"이라는 말을 던져 우리를 또 웃게 만들었다. 다들 계속 웃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때 상황이 생각나 한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밤 8시 반, 프로볼링고에 도착했다. 족자카르타나 수라바야 등지에서 투어로 오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현지 회사와 연결된다. 한마디로 프로볼링고가 브로모 화산 투어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짐을 다 내리고, 족자카르타에서 받은 영수증을 여기 투어 회사에게 제출했다.
이제부터 거의 트럭같았던 낡은 버스로 갈아탔다. 아직 브로모 화산에 도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는 산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어두웠고, 불빛도 없었다. 무려 2시간을 달리고서야 거의 정상에 있었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족자카르타에서 예약할 때부터 알았지만 우리가 묵게 될 숙소는 시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짝 문제가 생겼다. 원래 안내해줬던 방은 꽤 괜찮았는데 나중에 바꿔준 방은 여러 면에서 별로였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봤던 극악의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 화장실도 6명이서 같이 쓰는 공용에다가 난방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아까 그 방이 아닌 왜 이런 방을 우리에게 제공하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차갑게 대했다.
이미 12시라 어쩔 수 없는 것을 우리도 안다.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화가 난 상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의 상태보다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마욤과 임마누엘은 피곤한지 적당히 항의하다가 들어가 잤고, 우리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봤다. 이런 깊은 산에 가로등이 있을리 만무하다. 브로모 화산이 이 근처에 있다면 보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추웠다. 여기가 얼마나 높은 곳인지 짐작도 되지 않은데 거의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 할만큼 바람이 차가웠다.
조금만 내려가봤는데 다른 숙소인 요시가 보였다. 사실 숙소를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냥 요시에 들어가서 대충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이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길래 일단 허기라도 달래고자 했다.
식당은 은은한 조명과 나무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탓인지 분위기가 아늑해서 좋았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식사는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그것도 4시에 일어나서 브로모 화산을 올라가야 하는데도 맥주를 마셨다.
내 옆에는 노트북을 하고 있던 외국인이 한 명 있었는데 잠깐 대화를 해보니 슬로베니아 사람이라고 했다. 다음날 브로모 화산에서 잠깐이지만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앞에는 어느샌가 대화를 하게 되었던 인도네시아 커플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나보고 일본 사람이냐고 묻길래 난 그 사람이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
정말 추웠지만 맥주를 마시면서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친구는 이슬람교라고 했는데 결코 이슬람교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과격하거나 테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인도네시아에 머문다면 이슬람교가 그런 종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사진도 한장 찍었다. 이 친구가 이 사진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지 갖고 싶다했다. 그래서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면 나중에 꼭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사진을 보내주긴 했는데 잘 받았는지 답장이 오지 않아 모르겠다. 아무튼 늦은 새벽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좀 피곤해졌다고 생각되어질 때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이미 새벽 1시를 훌쩍 넘겨 고작해야 2~3시간 잘 수 있었다. 게다가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좀 찝찝했다. 그래서 새벽 3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씻고 나가려는 다짐을 했다.
너무 추워 옷을 다 입고, 침낭까지 덮었다. 비록 여름용 침낭이었지만 인도네시아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불을 안 주는 경우도 많아 무척 유용하게 사용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누우니 바로 잠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피곤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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