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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황홀했던 브로모 화산의 일출 보고난 후 이제 진정한 브로모 화산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브로모 화산은 언제 폭발할지 몰라 상황에 따라 올라가는 게 통제가 되기도 한다는데 이날은 운이 좋았는지 브로모 화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던 맞은편 산을 올랐고, 그 이후에는 다시 지프를 타고 브로모 화산 근처로 이동했다. 족자카르타에서 브로모 화산 투어를 예약할 때만 하더라도 지프는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먼 거리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지프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걸어다니거나 브로모 화산에서 직접 돈을 내고 지프를 타면 된다. 브로모 화산까지는 너무 멀어서 지프를 타지 않으면 정말 힘든데 간혹 먼지를 들이키며 걸어다니는 서양 여행자도 볼 수 있었다. 거리를 생각할 때 이건 미친 것 같다.


당연히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달리는 내내 계속해서 몸을 튕길 정도로 험난한 지형이었다. 맨앞에 앉았던 나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환하게 밝아진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따스하지 않았지만 햇빛만큼은 강렬하게 등장했다. 15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어느덧 브로모 화산의 근처까지 왔다.


지프는 브로모 화산 근처까지 데려다 주지 않았다. 이제 여기에서부터 브로모 화산의 정상까지 걸어가야 했다. 일단 평지니까 새벽에 올랐던 산보다는 좀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물론 크나큰 착각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브로모 화산의 위압감은 굉장했다. 커다란 분화구에는 주변을 회색빛으로 물들만큼 자욱하게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새벽에는 아름답고 황홀했다면 이제는 브로모 화산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 순간만큼은 모험 영화의 주인공처럼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이는 기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태우려는 말이 정말 많았다. 새벽에 거친 숨을 몰아 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올라갔는데 이번이라고 말을 탈 필요가 있을까? 걸어가자. 걸어서 브로모 화산 정상까지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말을 타려면 진작 타는 게 좋다. 언제 타는 게 좋을지 재보고 망설이다 보면 결국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중에 힘들어 돈을 내고 말을 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틈틈히 멈춰서서 브로모 화산을 바라봤다. 정말 굉장했다. 세상에 이런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브로모 화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사원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브로모 화산을 투어로 오지 않은 여행자라면 이 사원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목적지는 브로모 화산이라 이런 사원은 관심밖이긴 했다. 사원을 지나칠 무렵은 아직 브로모 화산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주변을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로모 화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여행자 중에서 말을 타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어느 가족은 말을 두 필 빌려 편하게 가고 있었다. 배낭여행자는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들 돈이 없어서인지 말을 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니면 아직 본격적인 난코스를 만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슬슬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브로모 화산을 오르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어제 밤부터 그렇게 추운 날씨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더워졌다. 게다가 화산재 탓인지 사막같이 푹푹 빠지는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땀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브로모 화산 올라가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새벽에 올랐던 산보다 더 힘들었다. 너무 더워 옷을 벗었다. 이제는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말이 너무 타고 싶었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뒤늦게 말을 타는건 역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가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가장 힘든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고 좋아했던 게 아니라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냐는 반응이 절로 나온 것이다. 게다가 분명 계단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에도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브로모 화산을 오를 때부터 힘들게 만들었던 푹푹 빠지는 땅은 이 오르막길에 접어 들면서 가장 심해졌다. 발걸음은 상당히 더뎌졌고, 거친 숨과 함께 짧은 휴식은 자주 이뤄졌다.


정상을 코앞에 남겨뒀지만 모두 여기서 쉬고 있었다. 마욤과 임마누엘도 힘든지 말없이 정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다. 조금만 힘을 내자는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다리가 점점 아파오더니 나중에는 점점 네발로 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브로모 화산의 정상에 올랐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렇게 거대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던 분화구였는데 막상 정상에서 보니 생각보다 초라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온천지역에서 보는 수증기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이긴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브로모 화산을 오르는데 정상은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어 보였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저 분화구 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괜한 불안감이 생겼다. 아무튼 힘들게 정상에 온 만큼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빤히 쳐다 보거나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행렬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연기만 내뿜던 분화구는 어느 순간 괴이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치 괴물 울음 소리처럼 들릴 때면 연기가 더 많이 솟아 올라왔다. 이 브로모 화산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럼에도 이 화산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여행자들이 어제도 오늘도 오르고 있다.


브로모 화산의 일출도 보고, 연기가 솟아오르는 분화구까지 봤으니 이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저렇게 먼곳에서 걸어왔나 싶을 정도인데 다시 돌아갈 때가 되자 저기까지 언제 가나 싶었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무척 수월했다. 올라갈 때는 푹푹 빠지는 길로 인해 힘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오히려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어 훨씬 편했다.


어제 만난 슬로베니아 사람은 여기서 또 만났다. 새벽에 잠깐 만났는데 이 사람은 이제서야 올라가나 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런 유명한 관광지라면 적당히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파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내려가는 동안에도 맞은편에서는 힘들게 오는 서양 여행자들이 많았다. 어쩌다가 다른 여행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자는 정말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생긋 웃으면서 아직 분화구까지는 많이 남았다고 하니까 정말이냐며 되묻고는 한숨을 쉬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말과 마부의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말만 보면 셔터를 눌러댔을 정도다. 브로모 화산 근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도 좀 신기하고, 돈을 벌기 위한 이동수단이기는 하지만 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던 것이다.  브로모 화산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장면이다.


브로모 화산의 거대한 위용에 사로잡혔던 시간을 뒤로 하고, 지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지프 앞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지 박소를 먹고 있던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맛있겠다.


떠나기 직전에도 창을 통해 보이는 브로모 화산을 담는데 열중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찍은 사진만 해도 정말 많았는데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계속 안전이 보장된다면 자연의 경이로움 이면에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지프를 타고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산을 오르느라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말이다. 곧바로 이젠 화산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 씻기는 틀렸다. 이 상태로 이젠 화산까지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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