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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오사카 시내가 아닌 오사카 부를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상당했다. 아무튼 오사카 여행을 떠난 후 이틀째가 된 후에야 텐노지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전에 들린 곳이 스미요시타이샤다.

스미요시타이샤는 일본 전역에 2000여개가 넘는 스미요시 신사의 총본산으로 오사카 중심부에서는 살짝 떨어져 있지만 새해에는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룰만큼 무척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나는 닌토쿠 천황릉을 보러 사카이에 온 상태라 여기에서부터 스미요시타이샤로 찾아 가야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을 방문했을 때도 걸어왔지만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거대한 무덤답게 내가 가야할 미쿠니가오카역까지는 대략 1.5km의 거리를 자랑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나는 역까지 열심히 걸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닌토쿠 천황릉만 대충 보고 돌아가지만 좀 더 여유롭게 사카이를 여행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걷고 있는 동네 분위기만 놓고 봐도 골목길을 탐방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쳤다.


거리를 걷다가 맨홀 뚜껑을 보고는 잠시 멈춰섰다. 사카이를 상징하는 그림이 아닐까 추측을 했는데 갑자기 맨홀 뚜껑보다 여행을 하면 이런 사소한 것에도 눈길이 가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보면서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난카이 & JR 미쿠니가오카역에 도착했다. 조금 외진 곳이라 그런지 어느 시골 마을의 간이역 정도로 보였는데 나는 어김없이 입구 앞에서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스미요시타이샤(Sumiyoshitaisha)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요금은 어떤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뭐, 사실 익숙하지 않으면 물어보는 게 최고다. 곧바로 역무원에게 가서 스미요시타이샤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어려 보이던 역무원은 말로 설명을 해주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내가 있었던 미쿠니가오카역에서 스미요시타이샤까지는 한 번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갈아타는 방법이나 어느 전차를 타야 하는지 적어줬다. 무뚝뚝한 것인지 아니면 영어를 못해서인지 대화를 많이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친절함은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제대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되서 전차가 들어오면 일부러 역무실에서 나와 다음에 타라고 알려줬다.


다만 그는 한국 사람은 전부 한자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영어로 적어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보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가 알려준 방법에 의하면 16시 19분 전차를 타고 텐가차야에 내려서 스미요시타이샤로 가면 된다. 가격은 250엔이었다. 일단 텐가차야에 도착하면 스미요시타이샤 방향으로 가는 로컬 전차를 타든지 아니면 다른 전차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19분에 들어오는 전차를 타고 텐가차야로 향했다. 어김없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오사카의 풍경을 바라봤다. 이렇게 느긋하게 오사카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때는 전차를 타고 있는 순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오사카에 도착한 이후로 아직 적응이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난 점심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아침을 풍성하게 먹지 않았다면 벌써 배고프다고 계속 중얼거리며 힘겨워했을 것이다.

텐가차야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다시 어느 플랫폼에서 타야하는지 몰라 이번에는 역 내부에서 과자를 팔던 여자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내가 준 종이를 보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결국은 역무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스미요시타이샤로 가는 방법을 물어봐 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곧장 역무원에게 물어볼걸 그랬다.

역무원으로부터 3번 플랫폼에서 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3번 플랫폼으로 가는 도중 아까 그 과자를 팔던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잠시나마 나에게 열심히 알려주려고 애썼던 분들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말을 했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3번 플랫폼에서 로컬을 타고 이동하니 금방 스미요시타이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 도착해서 스미요시타이샤까지 거리가 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도상에서는 무척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역에서 스미요시타이샤로 가는 방향을 커다랗게 화살표로 표시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동쪽 출구로 나가면 바로 스미요시타이샤가 나온다.


역에서 나오자 주변의 풍경이 무척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신사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점을 보는 곳도 있었고,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스미요시타이샤 입구 앞 도로에는 철로가 보였는데 한 칸짜리 노면전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오사카에도 노면전차가 있는지 미처 몰랐는데 이게 한카이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사 입구 앞에 도달하자 멀리 기모노를 입고 걸어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보였다. 그저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를 봤을 뿐인데 신사에 왔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난 일본 여행을 하면서 신사를 갔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내 기억 상으로는 처음 온 신사의 분위기를 천천히 만끽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있던 노점들이 영업을 끝내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영업을 종료하기에는 이른 시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스미요시타이샤가 5시에 문을 닫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뭐라도 먹고 싶은데 왜 이렇게 빨리 노점을 정리하는지 아쉬워했다.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이 많아 보였는데 거의 다 철수직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남은 타이야끼(도미빵)가 있던 노점이 보였다. 타이야끼는 우리나라 붕어빵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일본에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과, 순박하게 생긴 꼬마 아이 두 명이 있었는데 막 철수하기 직전이라 그런지 남은 타이야끼를 집어넣고 있었다. 마침 배고파서 허기라도 달랠겸 타이야끼 먹어보기로 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타이야끼 하나에 100엔이었다. 100엔이면 정말 저렴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당시 환율로 따지면 무려 1500원이었으니 초고급 붕어빵을 구입한 셈이었다.


많이 먹으면 질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가볍게 허기만 달래기 위해 하나만 구입했다. 그런데 모양만 보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붕어빵이었다. 그렇다고 맛이 확연하게 다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배고팠기 때문에 맛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내릴 여유따윈 없었다.


타이야끼를 먹으면서 주변을 보니 오늘 미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러 강아지들이 보였다. 동네 사람이라 원래 아는 것인지 아니면 강아지 모임을 하는 날인지 모르겠다. 난 슬그머니 다가가 털이 복실복실한 강아지를 쓰다듬어 줬다.


아무튼 원래 목적은 타이야끼도 아니고, 강아지를 보는 것도 아닌 스미요시타이샤였으니 서둘러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약간 경사가 있었던 다리를 건너 신사로 향했다.


일본 신사에서는 항상 볼 수 있는 흐르는 물과 나무로 된 바가지가 있었다. 사실 난 이까지만 해도 일본의 신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왜 여기에 물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목마른 자들은 목을 축이고 가라는 의미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로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고, 입안을 헹구는 용도였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난 게 한 가지가 있다. 이 앞에 도착하자마자 난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 이 물을 마셔도 되는지 물어봤었다. 아주머니는 "아이 돈 노우"라고 말했는데 그게 물을 마셔도 되는지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어를 잘 모르니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난 일본 사람이 왜 그런 것도 모를까 이상하게 생각했다.


붉은색 기둥과 나무로 된 건물만 놓고 본다면 우리의 절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지만 사실 일본의 신사는 엄숙하기 보다는 가벼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특히 다른 신사보다도 스미요시타이샤가 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운세함 때문이었다. 입구 앞에는 돈을 넣고 운세를 보거나 행운을 가져다주는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흡사 놀이공원에 온 느낌이었다.


저쪽에서는 아이와 함께 운세를 보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살펴봤는데 통을 흔들면 나오는 작은 막대기를 확인한 후 그 앞에 비치된 종이를 읽어 보면 되는 것 같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종이를 확인하자 깔깔거리며 무척 좋아했다. 대길이라도 나온 것일까?


운세를 보는 것 말고도 행운의 의미로 추정되는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것도 있었고, 토끼 모양의 작은 인형도 있었다. 혹시 2011년이 토끼해라서 판매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지금은 2012년인데 토끼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작년 인형의 재고처리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이곳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운세가 아닌 놀이를 즐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옆에 있는 통에 돈을 집어넣은 뒤 운세함을 돌리고, 종이를 뽑기만 하면 된다. 물론 멀리서 관리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냥 자유롭게 이용을 하면 된다. 외국인이었던 내가 보기에는 진지하게 운세를 본다는 것 보다는 그냥 놀이처럼 보였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보통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앞에 앉아 복비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운세인데 이건 어느 스포츠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신사라면 웅장한 분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이었다. 신사라는 본래의 역할보다 사람들은 운세를 보는데 더 열중하고, 기념품을 구입하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마냥 싫지 않았다. 오히려 엄숙하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고 할까? 가족이나 연인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신사에 와서 둘러보고, 재미삼아 운세도 보는 곳처럼 보였다. 게다가 내가 갔을 때는 조용한 신사를 만끽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다른 쪽에는 운세함이 아닌 사람에게 직접 운세를 보거나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작은 열쇠고리 하나도 가격이 1000엔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그냥 구경만 하다가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귀여운 12지신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평소 여행을 하면서 기념품을 구입하지 않는 편인데 이 열쇠고리만큼은 손에서 쉽게 놓지 못했다. 망설이고 있는 그때 경비원 아저씨가 스미요시타이샤를 닫을 시간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시간의 촉박함을 느끼고 결국 사버렸다. 


아직 스미요시타이샤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문을 닫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늦게 온 편은 아닌데 여기는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는 것이었다. 신사가 5시에 문을 닫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타이야끼 노점의 꼬마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지 트럭 조수석에 탄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도 마지막 손님이었던 나를 기억하는지 창문너머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보이자 살짝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래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까 아주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전차를 타려고 돌아가는데 아까 신사에서부터 보였던 커플이 내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신사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가는 커플의 모습이 시샘이 날 만큼 예쁘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