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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사카 중심부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여행의 둘째 날, 그것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텐노지로 가고 있었다. 스미요시타이샤에서 전차를 타고 텐노지로 이동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여정만 나에게 남았을 뿐인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스미요시타이샤 역으로 가서 노선표를 보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옆에 있던 여자에게 물어봤는데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의사소통이 통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여기서 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타야 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밖으로 나가야 하나 보다.

밖으로 나가서 잠깐 헤매다가 문득 스미요시타이샤 앞에 노면전차(Street Car)가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나에게 말해주려는 것은 바로 그 노면전차, 즉 한카이선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도로 앞 철로에 가까이 가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정거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타면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거장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남자에게 텐노지로 가는 것인지 물어봤다. 그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일어서서는 노면전차 시간표도 확인시켜 줬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였는데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웃음을 짓더니 한국말도 몇 마디 해보려고 시도했다. 오히려 역으로 “니혼진 데스까?(일본 사람입니까?)”라고 말을 하니 내 일본어에 빵 터졌다. 여기가 시골도 아닌데 의외로 순박해 보이던 아이였다. 잠시 후 부모님으로 운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가용이 도착하자 손을 흔들면서 떠났다. 


노면전차 시간표라도 확인할 겸 가까이 가봤다. 배차시간이 거의 5분이라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카이 노면전차의 정거장은 왜 이렇게 폭이 좁은지 한 사람이 올라 서있으면 공간이 남지 않았다. 심지어 내 앞과 뒤 모두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였다. 이정도면 정거장이 꽤 스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다.
 

내가 탈 노면전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염없이 도로를 구경했다. 한 칸짜리 노면전차가 지나가는 모습은 구마모토나 나가사키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구마모토나 나가사키를 여행할 때 호주나 홍콩에서 봤던 트램과는 다른 모습이라 무척 신기하게 쳐다봤었는데 오사카에서도 노면전차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드디어 내가 타고 갈 하늘색 노면전차가 등장했다.


덜커덩거리며 달리는 노면전차는 무척 느리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를 오사카의 중심지로 데려다 주고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다른 전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노면전차를 타는 것 마냥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창밖의 풍경도 살펴봤다. 이제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 도심지에서 하나 둘씩 불이 밝혀졌다.


언제 내릴지 모르지만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께 노면전차의 가격을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200엔이고, 내릴 때 내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나 보다.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여기가 텐노지인 느낌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물어보기로 했는데 내 옆에는 무슨 날인지 한껏 꾸민 여자 4명이 있었다. 무슨 파티라도 가는지 화장도 진하고,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났던 여자는 나에게 텐노지라고 알려줬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종착역이었다.


내리고 살펴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 종착지였다. 철로가 딱 여기서 끝나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요금도 노면전차에서 내지 않고, 역을 나갈 때 냈다.


내가 묵을 호텔은 무척 가까웠다. 역에서 고작해야 5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텐노지 미야코 호텔이었다. 물론 역의 내부는 복잡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도심지로 오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카드키를 받아 들었는데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다리는 너무 아프고,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는데 이대로 쉴 수는 없었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오사카에 왔으니 명소도 하나쯤은 구경하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방은 평범했다. 일본 여행을 할 때 비즈니스급 호텔에서 묵은 적이 많기 때문에 딱히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분명 오늘 잠도 거의 안 잘 것 같은데 호텔에서 묵는 게 아까웠다. 내가 너무 배낭여행자 마인드인가 보다.

원래 오사카에서 일본인 친구를 만날 생각이었는데 시간도 안 맞고, 내가 휴대전화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아 연락을 주고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호텔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메세지를 남기긴 했지만 2박 3일의 짧은 일정과 너무 먼 거리를 이동한 탓에 그 친구와는 만날 수 없었다.

아무튼 체크인을 하고 눕고 싶었지만 30분도 쉬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호텔 카운터에서 지도와 지하철 노선표를 챙겨 받은 뒤 곧장 역으로 향했다. 내가 가고자 할 신세카이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텐노지역으로 가는 도중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건 바로 그가 부른 노래 때문이었는데 무려 한국말로 불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씨엔블루의 ‘Love’를 일본인이 부르다니 신기했다. 뭐 발음은 조금 이상하긴 했다.


난 텐노지역에 가서 노선표를 보다가 옆에 있던 할머니께 어떻게 가는지 물어봤다. 정말 분명히 알려줘서 난 승차권을 구입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타고 가야할 미도스즈선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역무원에게 물어보니까 다른 역에 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러니까 이름이 같은 텐노지라도 어떤 노선인지에 따라서 역이 달랐다. 역시 오사카는 한치의 방심도 용납할 수 없는 곳이다. 


맛있어 보이는 무언가를 팔고 있었는데 정말 하나 먹고 싶었다. 배고픈데 괜한 고생을 또 하고 말았다.


이번엔 미도스즈선이 있는 역으로 제대로 찾아갔다. 승차권을 구입하기 전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에게 물어보니까 친절하게도 일일이 다 알려줬다. 사실 영어로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요금이 얼마인지만 알면 큰 어려움은 없긴 했다.


계단을 내려가니까 마침 전차가 출발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다. 그런데 나 아침부터 돌아다녔으면 이제 좀 숨을 돌려야 하는데 텐노지에 도착해서도 정신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정말 피곤했던 하루였는데 사실 오사카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