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소조폴(Sozopol)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을 때 블로그에 남겨진 메시지를 하나 확인했다. 한국인 여행자 분께서 마침 터키에 있다며 만약 이스탄불에 올 계획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원래는 이틀 정도 더 머무르려고 했던 소조폴에서 급하게 떠날 준비를 했다. 사실 게으른 여행자인 내가 준비랄 것도 없었고, 그저 그 다음날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는 것으로 터키행 여정을 시작했다.
일단 나는 부르가스(Burgas)로 히치하이킹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약 40분 정도 걸어 소조폴을 빠져 나온 후 좁은 공간이 있는 곳에서 손을 들었다. 5분도 되지 않아 일리야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날 태워줬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주 쉽게 부르가스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서 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멀리서 갑자기 차가 멈췄고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몰타 터르노보?”
가까이 다가가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나에게 연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터키로 가냐고. 그렇다고 말하니 다시 이스탄불 가냐고 물었다. 내가 이스탄불을 간다고 말하자마자 그는 내게 손짓하며 얼른 타라고 했다.
“어서 타! 정말 운이 좋은 친구군, 마침 이스탄불 가는 중인데.”
세상에, 300km가 넘는 거리인데다가 국경을 넘는데 이렇게 쉽게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게 될 줄 몰랐다. 여태까지 수많은 히치하이킹을 해봤지만 이번처럼 먼 거리를 한 번에 가게 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떨면서 이동하다 보니 금세 터키 국경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터키 세관원을 태우고 이스탄불로 갔다.
그는 사람이라면 서로 주고 받는 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말 한심하게도)순간적으로 태워줬으니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았으나, 날 태워주고 자신은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고마워했다.
꽤 힘든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난 버스보다 더 빨리 5시간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약속을 잡았던 한국인 여행자 분께 연락을 했고, 우리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이스탄불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로 불릴만 했다. 약속했던 귤하네 공원 근처로 가는 동안 처음엔 블루 모스크인 줄 알았던 거대한 이슬람 사원 예니 모스크가 보였고, 갈라타 다리 위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도 몰랐지만 먼저 나를 알아보셔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물가가 비싼 이스탄불인데 배낭여행자는 사주신 맛있는 저녁을 감사하게 먹었다. 그리고 공원을 같이 걷다가 벤치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스탄불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 것 같아 참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에 예니 모스크의 야경을 바라봤다. 근데 여기서 구두닦이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수법이 있는 것 같다. 배낭여행을 오래하면 미리 알려진 사기수법을 모르더라도 대충 말도 안 되는 호의에 거부반응이 나오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내 앞을 지나가던 구두닦이가 구두솔을 떨어트린 후 내가 주워주자 고맙다며 날 계속 부르며 오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무시하고 재빨리 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갈라타 다리를 지나갈 때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구두솔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이놈들의 수법이구나’라고 눈치채 아예 줍지도 않았다.
다음날 숙소를 좀 더 싼 곳으로 옮겼다. 위치는 술탄 아흐멧 모스크(블루 모스크)에서 가까워졌다.
저녁에 다시 한국인 가족 여행자와 만나 아시아 지역으로 배를 타고 갔다.
원래는 일몰을 보려 했으나 구름이 지평선 부근에 깔려 있어 아쉽게도 제대로 된 일몰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아시아 지역에서 저녁을 먹고 어둠이 깔린 뒤에 유럽 지역으로 돌아왔다.
술탄 아흐멧 모스크(블루 모스크)의 야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늦은 밤에 카페에 앉아 터키 맥주 에페스를 마시며 다시 수다를 떨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냥 멍 때리거나 침대에 누워있었을 텐데, 이날도 정각까지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터키 삼촌’이라고 불렀던 윤지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잘 잤고.
다음날 혼자 이스탄불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단순 쇼핑이 아니라 정말로 여행에 필요한 것들로 신발이나 텐트 수리도구, 윈드자켓 등을 이스탄불에서 사고 싶었다. 그 전에 한국 여행자들에게 ‘고등어케밥’으로 유명한 발릭에크멕을 먹으러 갔다. 고등어 굽는 냄새로 주변이 진동하는데, 정말로 빵 사이에 고등어를 넣어 준다. 맛은 너무 기대를 했는지 딱 고등어맛이었고 무엇보다 먹으면서 가시를 발라내는 게 좀 불편했다.
갈라타 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외국인 여행자에겐 정말 신기한 풍경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단순히 취미생활이 아닌 삶이자 생존의 일부였다.
텐트 수리도구만 겨우 산 뒤 다시 갈라타 다리를 건너 돌아왔다. 날씨가 너무 덥다는 핑계로 많이 돌아다니지 않은 것 같아 예니 모스크 주변을 걸었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예니 모스크 주변에는 이집트 시장이 있다. 멀리서 봐도 복잡해 보이는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난 또 ‘나중에’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예니 모스크로 향했다. 늘 그렇지만 난 이스탄불에서 일주일이나 있었음에도 다시 가지 않았다.
높이 솟아 오른 탑을 올려다 봤다. 다른 나라의 이슬람 사원 규모를 압도하는 이스탄불의 사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예니 모스크의 경우 영어로는 ‘뉴 모스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상 모스크에 들어가면 천장부터 살펴보게 된다.
예니 모스크를 나와 난 쇼핑거리를 걸었다. 어딘지는 몰라도 방향 감각만 의지해 걸었다. 그러다가 작은 의자에 터키식 차이를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가 차이를 하나 달라고 했다. 아무리 이스탄불 물가가 비싸다 하더라도 차이 한 잔은 고작해야 1리라(약 420원). 차이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터키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터키식 아이스크림은 여기도 비슷하다. 열정적인 움직임에 장난으로 손님을 놀리는 것까지.
마침 그랜드 바자가 근처에 있어 가봤다.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에 사람이 가득했다. 구경은 보는 둥 마는 둥 대충하다가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 잠깐 바람을 쐬러 거리로 나갔는데 터키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그렇게 거리에서 대화를 계속 나누게 되었다. 자기는 이스탄불 여행을 왔고 며칠 뒤 네덜란드로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거리에서 10분 넘게 대화를 나눴을 무렵 같이 맥주 마시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나도 좋다고 따라갔다. 그러나 이 친구는 탁심에 있는 클럽에 가자고 꼬셨다. 일단 난 클럽에 가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시 너무 피곤해 그저 근처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만 말했다. 또 하나, 내가 비록 이 친구랑 몇 마디 나누긴 했어도 서로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의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난 이곳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친구는 조금 고민하더니 나중에 다시 만나자며 혼자 떠났다. 정말로 이 남자는 친구가 필요해서 반가워서 나에게 말을 걸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터키의 사기수법 중 하나가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클럽이 있다며 꼬시는 게 있다. 그런 사기수법이 있는지 몰랐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갈 만큼 생각이 짧지 않다.
이스탄불의 또 다른 관광지 지하수로도 갔다. 입장료로 20리라를 냈지만 지하수로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메두사의 얼굴을 보자 무서웠다.
아야 소피아 앞에서 터키 친구 술레이만과 만났다. 알바니아 티라나에 있을 때 술레이만과 아주 우연히 식당 앞에서 만났고, 이 친구 집에서 이틀간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그런 인연이 이스탄불에서도 이어져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술레이만 집에서 며칠 지낼 수 있었다.
위대한 건축물 아야 소피아는 원래 교회(정확히 말하면 정교회의)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정복하면서 아야 소피아는 모스크로 바뀌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분수대에서 수영을 하는 꼬마도 있다.
술레이만의 동생, 아흐멧(블루 모스크의 또 다른 이름은 술탄 아흐멧인데 그 아흐멧의 이름과 동일하다)과 함께 술레이만 집으로 갔다. 이미 엄청난 인파를 눈으로 목격한 터라 이스탄불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역시 대중교통을 타고 외곽으로 향하자 이스탄불의 교통대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역시 보는 것과 현지인처럼 체험하는 건 달랐다.
술레이만 집에서 지내면서 숙박비 부담은 줄었지만 이스탄불 외곽이라 매일 1시간 이상 술탄 아흐멧 모스크로 출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멀었다.
대신 점심은 술레이만과 아흐멧이 자원봉사를 하는 곳에서 먹었고, 저녁은 집에서 먹었으니 딱히 식비로 나갈 일이 없었다.
지금 이스탄불 내에는 ‘ask me’가 쓰여진 옷을 입고 외국인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술레이만은 중간관리자쯤 되었고, 아흐멧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아 영어보단 러시아어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했다. 너무 궁금해서 이게 학교에서 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국가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일부는 아랍어나 독일어 등으로 소통이 가능했다.
나는 여기서 만난 다른 자원봉사자 아칸, 레나, 에르투그룰과 함께 아시아 지역을 함께 돌아다녔다. 쇼핑센터를 구경하고, 맛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가고, 바다가 보이는 공원을 걸었다. 근데 아직 10대인 이 친구들과 다녀서인지 아니면 그날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것인지 이날 하루는 정말 피곤했다.
우리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왔고, 다시 술탄 아흐멧 모스크 앞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이들과 헤어진 후 난 이스탄불에 도착한지 4일이 지났는데도 술탄 아흐멧 모스크를 들어가지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얼른 들어가봤다.
역시 거대한 모스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함이 압권이었다.
몸은 피로했지만 알콜을 원해 근처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엽서를 썼다.
반대편 거리에 있는 케밥집에서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자, 고기를 썰어 바닥에 놓아줬는데 그 모습을 보자 이 관광객으로 가득한 거리에서도 삶이 엿보였다. 강아지에게도, 사람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말이다.
우체통에 쏙 넣으면 누군가가 엽서를 받게 될 것이다.
술레이만 집에서 나와 메트로(그들은 BRT를 메트로라고 불렀다) 정거장에서 바라본 도로는 이스탄불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메트로를 기다리는 인파를 봐야 한다.
난 술탄 아흐멧 모스크가 아닌 발렌스 수도교쪽에서 내렸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다리는 여러 번의 재건축이 이뤄진 후 현재의 형태로 남아있다.
역사적인 지역으로 분류되는 이 부근을 좀 더 탐험하기로 했다. 관광객은 거의 없는 거리와 모스크를 보면서 나름 만족했다.
이 근처 가장 유명한 모스크인 술레이마니예(영어로 부르면 술레이만이지만 실제 발음은 쉴레이마니예가 가깝다)로 갔다. 내 친구 술레이만과 같은 이름인데 그 때문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술레이만을 거리에서 찾을 때 ‘ask me’ 티셔츠를 보고 찾아가 술레이만 어딨는지 아냐고 물어보니 다들 이 모스크를 가는 방법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술레이마니예 모스크가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이들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는데 이제 보니 이스탄불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관광지였던 거다.
술레이마니예 모스크가 좋았던 점은 규모가 꽤 큰 사원인데 관광객이 적은 편이었고 내부에서 영어로 설명해주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이들은 무료로 이슬람이나 모스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무척 유익했다.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앞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볼 수 있다.
술탄 아흐멧으로 돌아가는 길에 옥수수 하나를 사먹었다. 여기는 가격이 다른데 보다 싸서 1.5리라였다.
난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오피스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또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술탄 아흐멧 모스크 근처에도 시장이 있는데 너무 관광지화 된 것 같아 돌아보진 않았다.
난 술레이만 집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어머니가 주시는 저녁을 늘 챙겨먹었다. 정말 감사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본 꼬마 아이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 고양이를 보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날은 탁심쪽으로 걸어가 쇼핑을 했다. 신발이나 바지 등이 이미 다 낡아 도저히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에 지내면서 탁심쪽으로는 많이 안 가봤는데 여기도 관광지를 위한 기념품 가게와 호스텔이 많았다. 언덕을 다 오르면 본격적인 쇼핑거리가 나온다.
고양이와 함께 있던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신발 하나 사지 못하고 무려 3시간 동안 걸었다. 결국 돌아가는 길에 아무데나 들어가 샀다. 1년도 버티지 못한 신발을 버리고 새신을 신었다. 전 직장 선배들이 사준 거라 좀 더 버텨보려 했는데 발뒤꿈치 부근이 다 뜯어져 도저히 신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좀 더 욕심을 내서 비싼 신발을 살까 생각했는데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내려놨다.
이스탄불에 처음 도착했을 때 봤던 곳이 탁심 광장인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다시 왔다.
거리를 넓었지만 사람들로 빼곡했다.
다시 갈라타 다리를 건너 술탄 아흐멧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가는 도중 포토프린터용 필름을 사고(비싸서 2박스만 샀지만), 렌즈용 캡도 하나 구입했다. 그야말로 소비의 날이었다.
여기는 레몬을 뿌린 홍합을 파는데 식당이 아닌 거리에서 파는 홍합을 개당으로 판매하는 게 너무 비싸다 느껴졌다.
마지막 날에 본 라면 판매 문구. 왜 이걸 이제서야 봤을까. 살까 말까 망설이다 내일 비상용으로 몇 개 사자고 하고 지나쳤는데 다음날 새벽에 떠나는 바람에 살 수 없었다.
메트로(BRT)를 기다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또 마주하게 됐다. 정말 트램을 타고 메트로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서울의 지옥철이 다시 떠올랐다.
4일간 먹여주고 재워줬던 술레이만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스탄불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복잡한 거리, 빼곡한 건물, 시장을 연상케 하는 시끄러움, 비싼 물가, 교통지옥, 관광객으로 가득한 중심가, 무질서 등은 어쩌면 혼돈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이스탄불이란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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