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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음 목적지는 정말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그곳은 터키를 여행한다고 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유명한 관광지 카파도키아였다. 하루 만에 이동해야 하는 곳이라 히치하이킹이 아닌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를 타고 가면 막연하게 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셔틀버스까지 탔던 것을 포함하면 약 13시간 걸렸다.

 

카파도키아의 마을 괴레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이렇게 장거리 이동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자전거로 4년간 여행하고 있는 우주여행자(http://www.universewithme.com)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마침 함께 있던 한국인 여행자 희원이와 저녁을 먹은 뒤 맥주를 사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카파도키아의 낯선 풍경과 하늘에서 수시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남들은 수십 개 볼 동안 나는 고작 2개 봤지만) 맥주를 마셨다. 분위기만으로도 금세 취할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새벽 2시까지 별을 봤다.


눈을 뜨고 아침에 바라본 카파도키아(정확히 말하면 괴레메)의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이었다. 사방이 돌로 이루어진 집과 종교적인 탑처럼 느껴지는 뾰족한 돌산이 가득했다.


카파도키아에 오긴 했지만 대체 뭘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이상한 여행자인 나는 천천히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하루는 걸어서 주변을 돌아봤다.


뾰족한 돌이 솟아있는 독특한 지형을 걸었다. 이곳이 다른 곳과 다른 독특한 이유는 과거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이 돌을 깎아 집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당시 집으로 사용했던 내부를 아무 어려움 없이 살펴볼 수 있다.


걷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날씨가 너무 더웠다.

 

저녁에는 페티에로 떠나는 희원이를 마중할 겸 맥주를 마셨다. 원래 다른 한국인 여행자와도 같이 맥주를 마시려고 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보고도 오지 않았다. 그냥 잠깐 와서 다른 일행과 약속을 잡았다고 말해도 괜찮았을 텐데 여러 번 불렀는데 안 오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런 것으로 실망하는 건 아니지만 며칠 뒤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 분은 5분의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진 경우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스탄불부터 더위도 많이 먹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몸이 피곤한 상태였는데 여기 게스트하우스가 날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괴레메는 전통방식의 동굴형 숙소가 많은데 내가 묵고 있던 방은 습기가 너무 차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지어 이불을 침대 위에 깔고 침낭을 덮고 자는데 침낭이 젖어버렸다. 결국 2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다. 이 새벽에 뭘 할 수 있을까 머리를 부여 잡고 생각하다가 열기구(벌룬)가 뜨는 걸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다.


새벽 5시부터 괴레메는 열기구 덕분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로 하루에 100개가 뜨는 열기구 때문. 당시만 해도 열기구를 탈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다.


커다란 열기구에 뜨거운 공기를 넣으면 천천히 떠오른다. 열기구를 타지는 않더라도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들뜨게 된다.


간혹 어떤 열기구는 내가 있던 언덕에 거의 닿을 듯 비행하는데 처음에는 이게 열기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껏 돈을 주고 열기구를 탔는데 날지도 못한다고 비웃었는데 사실은 파일럿의 비행솜씨가 더 뛰어나 계곡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것이었다.


열기구를 타게 되면 누구나 카메라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되나 보다.


100개의 열기구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하늘에 떠있는 열기구를 볼 수 있었다.


우주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드론을 날려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게 워낙 고가인데다가, 처음 다뤄보는 거라 만지는 것만으로도 망가지진 않을지 무서웠다.


카파도키아에 있을 때는 몸이 정말 안 좋았다. 가뜩이나 혓바늘이 생겨 먹는 게 힘들었는데 낮에 더위도 쉽게 타서 입맛도 없었다. 결국 하루는 심하게 아팠다. 아무튼 몸이 안 좋은데다가 입맛도 없어 빵이 아닌 밥이 생각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작은 마을 괴레메에 한식당이 무려 2군데나 있어 어렵지 않게 한식을 접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가격은 상당히 비쌌지만 하루 정도는 돈을 쓰자는 생각으로 김치찌개와 잡채밥을 먹었다. 맛은 예상보다 훨씬 괜찮은 편이었다.

 

보통 카파도키아에 오면 여러 투어를 신청해 여행하곤 하는데 나는 딱히 투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가고 싶은 곳만 따로 다녔다. 그 중 우치사르는 괴레메에서 아주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우치사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았지만 성을 비롯한 주변 경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괴레메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걸어 내려가는 여행자도 꽤 있다.


우치사르 성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대신 전망대 역할을 하는 꼭대기에 올라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


우치사르 성을 나와 피존밸리쪽으로 걸어갔다. 피존밸리 근처에서 결혼식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드레스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근데 사진을 찍고나서 이 분이 신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닭둘기’와는 달리 산에 사는 비둘기(피존)이다.

 

계곡에는 비둘기들의 거처인 집이 있다. 세상에 비둘기를 위해 집을 만들다니. 


괴레메로 돌아왔을 때 매우 재밌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 꼬마 아이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강아지가 사람처럼 핥아 먹고 있었다. 정말 귀여웠다.


카파도키아에서 또 인연을 만들었다. 며칠 전 이스탄불 버스터미널에서 엄마와 딸이 함께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여행자를 만났었다. 나중에 카파도키아에서 보자는 식으로 대화를 나눴고, 그게 정말 이뤄졌다. 우리는 딱 5분 대화를 나눴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직접 해주신 닭볶음탕을 같이 맛나게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내 블로그를 어디선가 봤다며 신기하다며 멋지다 말하셨지만, 사실 엄마와 딸이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모습이 훨씬 멋지다 생각한다.


일본인 여행자 소이치로와 중국인 여행자 샤오헤이를 만났다. 다른 나라 여행자를 만난 건 그리 신기한 게 아닌데 일본인과 중국인 여행자를 함께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본 적은 처음이라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사이지만 우리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여기에 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은 뒤 가장 더운 때에 일몰을 볼 수 있는 정상에 올라갔다. 괴레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스만 케밥이라고 하는 가게로 가서 음료수를 마셨다. 여기 벽면에는 세계 각국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이 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방명록이 붙어있었다. 샤오헤이는 우리도 하나 쓰자며 종이를 받았는데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종이를 3등분해 각자의 언어로 썼다.


저녁에는 괴레메의 야경을 보러 다시 언덕을 올라갔다. 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괴레메 야경은 제법 괜찮았다.


다음날 버섯처럼 생긴 돌산을 보러 가자는 우주여행자의 카톡에 일어나긴 했는데 몸이 정말 안 좋았다. 여태까지의 피로가 겹쳐서인지 몸이 무겁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출발은 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간단하게 정보를 얻은 뒤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는 아바노스로 가는 거라 중간에 내린 후 걸어서 이동했다. 무더운 날씨에 걷는 우리를 발견한 친절한 터키인은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1.5L짜리 물 한 병을 주고 갔다.

 

도착하자마자 본 신라면 간판에 혹해서 달려갔지만 한국 라면은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대체 왜 신라면 간판을 가져다 놨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돌산이었다. 분명 돌아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도 몸이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우주여행자의 제안대로 난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ATV를 타는 사람의 묘기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신기한 거는 신기한 거고 사실 여기는 여행자를 위한 대중교통이 없기에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여행하면서 도시간 이동도 수없이 히치하이킹을 했으니 이 정도 거리는 아주 쉬운 편이었다. 2번의 히치하이킹으로 괴레메에 도착한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저녁때까지. 분명 뭔가 잘못 먹었거나 더위에 피로까지 겹쳐서 그런 게 틀림 없다.


다음날 새벽에는 드디어 카파도키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열기구(벌룬)를 탔다. 새벽 4시 반에 픽업 온 차량을 타고 이동한 후 해가 뜨기 전인 5시 반부터 비행을 시작했다. 사실 열기구는 정말 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카파도키아까지 와서 열기구를 안 탈 수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더군다나 이미 열기구가 뜨는 걸 지상에서 본 후라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 타고 나서 느낀 점이라면 역시 열기구가 뜨는 걸 미리 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새벽에 100여개의 열기구가 한 번에 떠오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날씨가 추울 거라 예상했지만 열기구를 떠오르게 해주는 불 때문에 오히려 더웠다.


하늘에서 보는 일출과 열기구는 그림 같았다.

 

확실히 열기구는 스카이다이빙처럼 짜릿한 기분을 선사해 주지는 않는다. 하늘을 천천히 비행하면서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게 주 목적이라 비행 자체의 재미는 좀 덜한 편이다. 


괴레메에서 가장 가까운 오픈 에어 뮤지엄도 가봤다. 가는 길에 본 낙타, 메르스 괜찮을까?


오픈 에어 뮤지엄은 과거 기독교인(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고 하면 주로 개신교를 떠오르겠지만 여기서는 동방 정교회를 말한다)이 숨어서 살거나 예배를 보던 곳이다. 흐릿하지만 그들이 그린 성화가 많이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카파도키아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신비롭게 보이던 동네도 이젠 너무 익숙해 평범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3일 정도만 여행하는 곳을 10일이나 지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투어를 하지 않았던 나는 오래 지냈음에도 남들보다 소위 말하는 ‘관광지’를 더 적게 봤다.


다른 곳은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지하도시(언더그라운드 시티)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네브셰히르로 이동했고, 그 후 친절한 터키 아저씨의 도움으로 지하도시로 가는 버스를 어렵지 않게 갈아탔다.


밖의 날씨는 정말 더웠으나 지하도시에 들어간 순간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지하도시를 들어가자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카파도키아가 바로 이곳임을 알게 되었다. 개미집처럼 연결된 거대한 도시, 과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곳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겨우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보자 생존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종교라는 생각에 절로 경외감이 느껴졌다.


거실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10일째 되는 날에 떠나려 했으나 떠나지 못했고, 그냥 쉬면서 찢어진 텐트를 수리했다. 아직 텐트를 시험해 보지 못했는데 부디 잘 붙었기를 바란다.


카파도키아를 떠날 때는 다시 히치하이커로 돌아갔다. 애초에 터키는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할 생각이긴 했다. 목적지는 코니아(Konya)로 잡았다. 네브셰히르로 이동한 후 히치하이킹을 위해 많이 걸었다. 카파도키아에서 10일간 머물다 오랜만에 이동하는 건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확실히 오랜만에 이동하면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그 익숙하지 않은 기분에 휩싸이는 건 그리 나쁘지 않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나를 멀리서 지켜보던 오토바이 아저씨가 나보고 타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나를 고속도로까지 태워줬다. 딱 내가 가려고 했던 그곳이었다. 히치하이킹을 위해 손을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트럭이 내 앞에서 멈췄다. 아저씨와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코니아까지 간다고 해서 올라탔다. 대형 트럭답게 정말 느렸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줄 알았는데 60~80km로 달려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코니아에 도착했다.


당연히 트럭은 다른 방향이라 코니아 외곽에서 날 내려줬다. 여기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서 도시 중심지로 이동했다.


중심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굵은 빗방울에 한동안 아무데도 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안에서 비를 피했는데 토스트 밖에 팔지 않아 무지하게 배가 고팠지만 레모네이드 한 잔만 마셨다.


코니아는 여행자가 많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난 미리 카우치서핑으로 잠자리를 마련했는데 호스트는 오늘 10시에나 코니아로 돌아온다 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울 곳을 찾아야 했다. 낯선 곳에서 배낭을 메고 동네를 돌다가 술집처럼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카페는 라이브 연주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별도의 주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팝콘과 케이크가 나왔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공연을 하기 때문에 추가로 요금을 내야 하고 이런 다과도 기본적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나는 공연을 보지 않고 지금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다행히 딱 1곡이 끝났을 무렵이라 내 말을 이해해줘 공연에 대한 추가 요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낯선 도시에서의 밤이 시작되었다. 일단 호스트인 수앗의 집 근처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커다란 모스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스크가 있는 주변에는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가 있고 그 분수 주변으로 카페가 많다.


예상보다 조금 이른 9시 반쯤 카우치서핑 호스트 수앗 그리고 그의 룸메이트 메흐멧을 만났다. 집에 가자마자 맥주가 아닌 음료수를 마시면서 터키 축구중계를 봤다. 이틀간 와이파이가 없다는 것만 빼면 수앗과 메흐멧 집에서 정말 편하게 지냈다.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코니아 탐험에 나섰다. 수앗과 메흐멧의 말로는 코니아는 터키에서 6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여행자는 많지 않은지 사람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걸어서 찾아간 곳은 코니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이었다. 정말 신기한 건 입장권을 받았으나 돈은 받지 않았다. 무료인데 왜 입장권을 주는지 의아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이슬람에서 굉장히 중요한 곳으로 터키의 위대한 사상가 루미의 영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을 구경하던 도중 한국말을 아주 약간 할 줄 알았던 터키 아저씨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던 도중 “김치 먹고 싶어요”에 빵 터졌다.


코니아를 아주 구석구석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하루 정도 돌아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금은방을 비롯해 여러 물건을 파는 가게로 가득한 시장처럼 보이는 거리도 있었고, 커다란 공원 주변으로 도시 중심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파악했다.


저녁에는 수앗과 메흐멧이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같이 먹고(이 친구들이 계산을 했다) 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냥 따라가서 어떤 곳일 거라는 기대도 없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야경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작은 불빛이 모여 은하수처럼 빛을 발하고 있고, 그 경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우리는 근사한 야경을 보며 차를 마셨다. 수앗과 메흐멧이 아니었다면 나같은 게으른 여행자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다.


수앗과 메흐멧은 며칠 더 머물러도 괜찮다 했지만 레바논으로 가는 페리가 언제 있는지 몰라 하루 빨리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홈페이지의 부실한 정보는 믿을 수 없어 결제는커녕 문의만 남겼는데 이마저도 답장이 없었다. 레바논행 페리가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었지만 일단 출발했다. 당연히 히치하이킹으로.


대도시 코니아를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근처까지 가려고 했는데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 걸었다. 1시간 넘게 걸으면서 간간히 히치하이킹을 시도했고, 나를 발견한 어떤 터키인이 고속도로 근처까지 태워줬다. 그리고 여기서 히치하이킹을 다시 했을 때 10분도 되지 않아 낡은 차가 멈췄다.

 

터키에서 사람의 이름을 맞추기는 정말 쉽다. 고작해야 2주 조금 넘게 지냈지만 터키인들의 이름 패턴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 무함마드, 술레이만, 아흐멧, 메흐멧, 아칸... 이 아저씨의 이름도 술레이만이었다.


아저씨는 카르만으로 가는 고속도로 중간 지점에서 날 내려줬다. 그곳에는 과일을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멜론을 잘라주면서 나에게 계속해서 먹으라고 줬다. 정말 달고 맛있었다. 할아버지는 조금 앉아 쉬었다가 가라고 했지만(당연히 말은 통하지 않았다) 아직 거리가 한참 남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가 많아 히치하이킹은 조금 시간이 걸렸다.


히치하이킹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던 그때 멀리서 밴이 급정거를 했다. 그리고는 날 태우고 카라만(Karaman)까지 태워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신기하다며 셀카도 같이 찍었다. 이들이 일러주길 카라만에도 돌산을 깎아 집처럼 만든 유명한 곳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그냥 떠나 무척 아쉬웠다.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서 1시간 뒤에는 뮤트(Mut)에 도착했다. 날 태워줬던 친구들을 따라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 그제야 점심도 굶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케밥이 얼마냐고 묻고 돈을 내려고 했는데 가게 주인은 돈을 받지 않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며 주인은 자신이 사는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케밥과 아이란 그리고 차이까지 줬다.


작은 마을에 등장한 낯선 여행자가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냥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직 실리프케에 도착하기 전이라 난 배낭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의 커다란 배낭을 본 그들은 “스트롱맨”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서 실리프케(Silifke)에 도착했다.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나는 실리프케까지만 가면 뭐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실리프케에 도착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동네라 페리를 탈 수 있는 타슈츄(Tasucu)로 이동했다. 도시 외곽으로 걸어갔는데 마침 지나가던 마을버스(미니밴)가 타슈츄행이었다. 히치하이킹만 고집할 이유는 없어 얼른 탔다.


타슈츄에 도착했을 때는 7시가 넘었다. 작은 마을이라 어렵지 않게 페리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사무실을 찾았는데 여기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레바논 트리폴리로 가는 배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있다고. 인터넷에서는 일주일에 2편, 수요일과 금요일에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말하기를 일주일에 3편 있고, 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에 출발한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내일 출발하는 게 아니면 오늘 가면 된다. 하루나 이틀 더 머물면 돈만 더 쓰게 될 테니, 바로 티켓을 구입했다. 생각지도 못한 당일 출국이었다.


그러나 페리는 제 시간인 8시에 출발하지 않고 11시로 지연됐다고 했다. 난 남은 터키 돈을 다 쓰고자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타슈츄는 작은 마을이긴 했어도 항구도시라 그런지 외국인도 많고 카페나 노점이 많은 게 북적대는 느낌이었다.


11시가 되어도 페리는 출발한다는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12시가 되었을 때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배에 문제가 있어 내일 아침 9시에 떠난다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이제와 호텔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나에게 남은 터키 돈은 고작해야 5리라뿐이었다.


다들 사무실 바닥이나 차에서 눈을 붙였다. 나 역시 새벽에 동네를 정처 없이 걷다가 벤치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히치하이킹해서 겨우 도착했는데 떠날 수 없다니, 과연 아침이 되면 레바논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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