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서 뒤척이며 자다가 카페에서 앉아 꾸벅꾸벅 졸기를 몇 시간, 드디어 지겨웠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정말 힘들었다.
레바논 트리폴리로 향하는 페리. 역시 또 지연돼 예상보다 1시간 늦은 10시에 페리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금방 출발할 줄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 배를 몇 차례 탔는데 시설이 가장 좋지 않았다. 12시간이 넘는 장거리임에도 침대가 없고, 먹거리를 파는 곳에는 물과 음료수 그리고 햄버거만 팔 정도로 부실했다.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페리는 오후가 지났어도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굶주린 배는 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식당이 없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건 햄버거뿐이었다. 여기서 받는 돈은 레바논, 터키, 시리아 돈이었는데 다행히 유로도 받아줬다. 가지고 있던 10유로를 꺼내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햄버거가 정말 부실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지루한 항해가 시작됐다. 시리아인, 레바논인이 대부분이었고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사실 터키인을 비롯해 몇 명의 외국인이 보여 외국인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여행을 하는 외국인은 사실상 나 혼자였다. 저녁이 되자 다시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고, 잘 곳이 없어 테이블에 몸을 숙인채 겨우 눈을 붙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리 비워 준 긴 의자에 몸을 누워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몇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간단한 요기 거리를 줬다. 아무래도 외국인이 별로 없는 데다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으니 신기하기도 했을 거다. 시리아인 아저씨는 굳이 내 손에 먹을 걸 쥐어주고는 먹으라고 권했다. 옆에서 시간만 되면 작은 카페트를 깔고 기도를 하던 할아버지는 내게 이슬람의 축복에 대해 설명을 하려다가 이내 영어로는 어렵다는 걸 깨닫고는 “아담은 모든 이의 아버지라네. 하와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고. 그렇다는 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유럽인이나 레바논인이나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걸 의미하지. 안 그런가?” 라는 말을 남겼다.
길고 긴 항해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12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트리폴리에 도착했을 때는 약 18시간이 지난 후였다.
‘중동의 진주’라 불리는 레바논의 첫 인상은 확실히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최고점을 줄 수 있다. 배낭을 메고 걷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내 앞에 멈춰서 관심을 표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행히 트리폴리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구했는데 이들은 둘 다 시리아인으로 페라스와 크할리드였다. 호주인 스콧은 나와 같은 기간 이들과 4일간 함께 지냈다. 집은 깨끗한 편이 아니었지만 호스트가 굉장히 친절해 같이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 등 무척 편하게 지냈다.
트리폴리가 레바논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관광지로는 전혀 유명한 곳이 아니다. 페라스와 크할리드가 가이드를 자청해 여러 곳을 데려다 줘서 동네 탐방을 할 수 있었다. 작은 골목, 낡은 건물이 가득한 이 낯선 공간을 걸을 때 내가 비로소 중동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름 유명한 상징물 같기는 한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방치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함께 걷다가 어느 건물 지하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감상하기도 했다. 내용은 팔레스타인 관련 그림이나 조각상이 있어 저절로 관심이 생겼다.
우리는 미나(항구 부근) 주변을 걸었다. 트리폴리에 있는 동안 그 흔한 이슬람 사원은 가지 않았다.
크할리드의 친구의 차로 트리폴리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도 여행했다. 레바논은 종교로 인해 내전이 있었을 정도로 기독교(주로 마론파)와 이슬람교 사이에 갈등이 있다. 그래서 크리스챤이 모여 사는 지역과 무슬림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찾아간 작은 마을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곳으로 크리스챤 지역이었다. 우리가 내부를 들어가봐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문을 열어줬다. 정교회가 아닌 카톨릭은 확실했는데 곳곳에 독특한 성화가 눈에 띄었다. 특히 천사가 악마를 짓밟고 있는 공격적인 성화가 예배당 정중앙에 어울리지 않게 배치되어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산을 걸었다. 각자 잠시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시간을 즐겼다.
3일째에는 스콧과 나는 아직 트리폴리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탓에 따로 시내를 걷기도 하고 시장을 구경했다.
레바논 곳곳에는 군인이 많다. 심지어 트리폴리 중심부에도 콘크리트와 타이어로 만든 군인들의 초소가 있을 정도다.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을 보면 살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다가와 관심을 표하곤 했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무질서해 보이는 건물이 항상 사진의 배경이 되곤 한다.
스콧을 길을 가다가도 신기한 게 있으면 언제든 멈춰서 먹어봤다. 이건 일종의 아이스크림이나 슬러쉬였는데 특이하게도 판을 이용해 벽면을 긁어 종이컵에 담아줬다. 500파운드짜리 간식거리였지만 맛은 합격!
레바논 사람들은 유쾌하다. 언제나 여행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웰컴 투 레바논!”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스콧과 나는 탐험을 계속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이마에 장난꾸러기라고 적힌 아이들이 몰려왔다.
빨래줄처럼 길게 늘어선 전선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여행자는 아무도 없는 트리폴리 성이라 불리는 곳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봤다. 회색으로 가득한 생기 없는 사각형 건물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날씨는 더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내려오는 길에 장난꾸러기들의 요청에 의해 사진을 찍어줬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짓는 아이들, 그들을 보고 우리도 웃어버렸다.
일요일에는 크할리드와 함께 트리폴리의 일요시장(선데이마켓)에 갔다.
놀라웠다. 이게 정말 작동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조금 심하게 말하면 거의 쓰레기나 다름 없는 물건을 팔고 있었다. 집에서 쓸모 없는 물건이거나 어디선가 줒어 온 게 틀림 없다. 손잡이가 없는 냄비라든가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라디오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름 없는 게 없는(?) 일요시장을 구경하는 건 그래서 재밌다. 간혹 이런 곳에서 쓸모 있는 걸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먼지가 가득한 물건 속에서 보물을 찾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할아버지의 음료수는 달고 맛있었다.
외국인의 등장에 서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때론 웃음이 나왔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스콧과 크할리드는 집으로 돌아갔고 난 좀 더 트리폴리를 걷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막상 이렇게 말했지만 무더운 날씨에 금세 의지가 꺾였다.
어디선가 쫓아온 꼬마 아이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난리였다. 근데 막상 카메라를 들면 어찌나 부끄러움을 타던지 너나 찍으라고 서로 밀쳤다.
레바논 곳곳에는 아직도 내전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리폴리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오스만 제국의 시계탑이다. 올드타운을 이 시계탑 기준으로 나눈다.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트리폴리에서는 그 자리에서 신선한 오렌지 쥬스를 아주 싸게 마실 수 있다.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 한 잔 마셨다. 가격은 500파운드로 약 400원 정도다. 역시 베이루트와는 확연하게 다른 물가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트리폴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주로 택시를 탔다.
이번엔 스콧이 요리를 했다. 우리가 페라스와 크할리드 집에서 머무는 동안 주로 그들이 저녁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항상 먹기만 했던 게 걸렸던 것인지 스콧이 파스타를 만들었다. 우리의 저녁은 항상 풍성하고 맛있었다.
계속되는 정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때 크할리드와 그의 친구들이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제안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어차피 집에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으므로 흔쾌히 나갔다. 드라이브라고 해봐야 미나로 나간 뒤 24시간 영업하는 싸구려 카페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게 주요 일정이었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트리폴리는 이슬람이 강한 도시라 모두가 쥬스 혹은 차를 마시며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물담배도 빠지면 섭하다.
밤을 보내기엔 무척 좋다. 현지인들이 가득한 이곳 분위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시끄러운 주변 분위기에 동화됐다.
물담배가 익숙하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물담배 위에 숯을 얹혀 놓고는 열기가 식지 않도록 집기로 뒤집고 그래도 안 되면 꼬마를 불러 숯을 추가했다.
터키에서도 많이 봤지만 레바논 사람들이 특히 더 물담배를 사랑하는 것 같다.
트리폴리에서 4일 지낸 후 수도 베이루트로 바로 내려가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중간에 위치한 비블로스(Byblos)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비블로스로 향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1시간 40분 뒤 갑자기 높은 건물이 많아 이상하다 느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비블로스가 아닌 베이루트라고 했다. 레바논이 작은 나라라는 걸 깜박했다. 당연히 비블로스를 지날 때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베이루트에 내려 다시 트리폴리행 버스표를 살 때 이런 사정을 설명했더니 정말 고맙게도 직원은 그냥 타라고 했다. 꺼냈던 돈을 도로 집어넣고 트리폴리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엔 창구 직원이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대신 얘기해줬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비블로스는 내가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관광지였다.
비싸 보이는 카페와 펍이 성 주변에 가득했다. 실제로 체감하는 물가는 트리폴리의 두 배 이상으로 정말 비쌌다.
낮에 다시 비블로스 주변을 돌아봤다. 날씨가 더워 걷기는 힘들었지만 비블로스가 그리 큰 도시가 아니라 천천히 걸어도 괜찮았다.
깨끗해 보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봤다. 근데 근처에 나무나 그늘진 곳이 없어 너무 더워 보였다.
관광지답게 깨끗하고 예쁜 경치를 자랑한다.
옛 도시의 흔적을 살펴볼 수도 있다.
정말 관광지라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게 올드타운 내에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로 가득했다.
비블로스는 기독교가 무척 강한 지역이다. 약 80%이상 기독교인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교회(성당)를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덥다. 정말 이렇게 더울 줄 몰랐다. 이미 티셔츠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인터넷도 할 겸 펍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비블로스에서도 카우치서핑으로 지냈다. 다만 레이날도와는 그리 친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비블로스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레스토랑과 펍이 불을 밝힌다. 근데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비블로스 성은 전망대 역할을 하지만 8000파운드인 것을 보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비블로스에서 두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패트릭과 제니는 레바논인과 독일인 커플이었다. 딱 하루였지만 유쾌한 이들 덕분에 편하게 지냈다.
수도 베이루트(Beirut)에서도 카우치서핑으로 4일간 지냈다. 호스트는 레바논인 리발이었는데 여기서 다른 게스트인 이집트인 후삼과 멕시코계 스위스인 롭을 만나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후삼과는 나중에 이집트에서 보자는 즐거운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고, 롭과는 서로의 문화나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터키에서부터 몸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베이루트에서도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날씨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흐르는 땀방울, 잠을 이룰 수 없는 열대야는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만들었다.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습도가 정말 높았다. 텐트를 치고 잘 생각이었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이미 한 달간 레바논 여행을 했던 롭은 더운 날씨에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보자 “웰컴 투 레바논!” 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수도인 베이루트도 정전에는 예외가 아니었는지 수시로 전기가 나갔는데 그때마다 롭은 또 이렇게 말했다. “웰컴 투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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